[특파원 칼럼] 불확실성의 비용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는 러셀 클라크씨는 대중교통 수단인 바트(BART)에서 엘리베이터 수리공으로 지난 3월 취업했다. 건설업체에서 쫓겨나 실업자가 된 지 29개월만이었다. 그는 11살 난 딸을 위해 의료보험을 넣어야 할지, 아니면 식료품을 사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었다고 실업의 고통을 되씹었다.

최근 미국의 경제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가 장기 실업에서 벗어나 일터로 되돌아온 11명을 조명한 특집기사에 소개된 사례다. 미국의 실업률은 8.1%이며 1,200만명이 일자리를 찾고 있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실업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개선될 조짐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악화될 공산이 더 크다. 그리스를 거쳐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면서 미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뉴욕 금융시장도 유로존의 뉴스에 따라 울고 웃는 장세가 거듭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리스크 온 리스크 오프(Risk on, Risk off)다. 유럽시장의 상황과 뉴스를 체크하기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는 일이 당연시되고 경제채널의 새벽 프로그램 시청률이 급증하는 등 월가 금융인들의 생활패턴마저 바뀌고 있다.

미국의 유럽에 대한 수출은 1ㆍ4분기 86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 이상 늘었다. 하지만 유럽이 미국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친다. 유럽상황이 악화되더라도 미국이 직접적인 타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간접적인 영향은 훨씬 크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브라질ㆍ멕시코ㆍ중국 등 이머징국가들에 대한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이머징 국가들은 대외차입을 유럽계 은행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만약 유럽의 위기가 심각해지면 이머징국가들의 금융창구가 막히게 돼 결국 미국산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 여력도 줄어들게 된다. 또 다른 우려는 금융산업이다. 미국계 은행의 유럽에 대한 노출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6,560억달러에 달한다. 2009년에 비해 약 3분의1이 줄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기업과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을 움츠리게 하는 심리적인 효과도 막대하다.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유럽위기는 미국 기업인들 눈앞에서 흔들리는 경고 깃발이라고 촌평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S) 의장은 대학교수 시절인 1980년대, 투자는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기다림의 가치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현재의 투자를 위축시키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지금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계가 유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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