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낮과밤] 1. 증시의 베트콩, 데이 트레이더

미국 뉴욕에서 활동중인 공인회계사 리처드 버튼씨(40)는 요즘 하루중 7∼8시간을 인터넷과 씨름하면서 보낸다. 그는 하루에도 수차례식 주식을 매매하는 초단기 투자가들을 일컫는 소위 「데이 트레이더」이기 때문이다.올해로 투자경력 7년째인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20만 달러의 전재산을 모두 주식에 쏟아부은 채 인터넷에서 시황을 들여다보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버튼씨가 본업을 뒷전으로 미룬 채 인터넷 주식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였다. 그는 이 때부터 온라인 서비스회사인 아메리칸 온 라인(AOL)주를 하루에도 몇번씩 사고 파는 데이 트레이더로 변신했다. 연초부터 AOL주에 손을 댔던 버튼씨는 주가 변동폭이 워낙 심해 제대로 시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AOL이 3개월새 주당 70달러에서 140달러까지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의 상식으로 보자면 AOL이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었다. 주가수익비율(PER)만 500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버튼씨는 장기투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터넷 관련주를 외면할순 없었다. 그는 인터넷주를 산다면 실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유망하고 이런 점에서 회사가 급성장하고 이익도 내는 AOL이 가장 적당하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 때부터 버튼씨는 증시의 베트콩으로 변신, 하루에도 몇번씩 AOL을 사고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300주씩 거래를 했다. 그리고 1∼2 달러만 오르면 곧바로 내다 팔았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된 후 버튼씨는 점점 대담해졌고 거래 규모도 확대, 나중엔 1,000주까지 불어났다. 그는 하루에도 최소한 몇백달러에서 몇천달러까지 벌 수 있었다. 위탁매매 수수료가 한번에 15달러로 적었기 때문이다. 버튼씨는 데이 트레이딩을 통해 회계사로 일할 때보다 몇배의 목돈을 한꺼번에 챙길 수 있었다. 짜릿한 데이 트레이딩의 맛에 깊숙히 빠져버린 셈이다. 그는 요즘 주가 변동폭이 큰 델,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시스템 등을 상대로 데이 트레이딩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본업을 뒷전으로 한 채 데이 트레이딩에 빠져든 자신이 중독된 게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개인투자자들이 데이 트레이딩에 매몰될 경우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는데다 시장이 흔들리면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팔자 주문을 소화하기 어려운 점을 우려해 규제 조치까지 실시하고 있다. 미국엔 버튼씨처럼 인터넷 주식을 상대로 데이 트레이딩을 하는 투자자들이 최소한 2만명을 웃돌고 있다. 인터넷으로 거래하는 만큼 익명성이 보장될 뿐아니라 거래행위 자체가 간편하기 때문이다. 데이 트레이더들은 하루에도 주가가 20∼30달러씩 움직이는 아마존이나 야후같은 주식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기업의 수익률이나 시장 점유율 등 내재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다만 그날 그날의 뉴스에만 의존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이버 거래가 인기를 얻자 풀 서비스 브러커와 디스 카운트 브러커 등 관련업체들도 앞다투어 시장에 새로 뛰어들고 있다. 찰스 슈밥를 비롯한 수수료 할인업체 뿐만 아니라 사이버 거래만 전문으로 삼는 증권회사마저 등장했다. 대표주자인 아메리트레이드사는 계좌수가 일년새 9만8,000개에서 30만개로 불어났을 정도다. 90년대 들어 미국 증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이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에 대거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으며 중년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들은 노후대책을 위해 주식투자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뉴욕의 택시운전사들까지 주식투자를 부업으로 삼고 늘상 화제로 삼고 있다. 데이 트레이딩은 바로 미국적 가치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다. 다우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서는데 100년이나 걸렸다. 이에 반해 1,000에서 9,500을 돌파하는데 걸린 기간은 불과 16년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근본이 아무리 양호하다고 해도 점차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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