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올림픽을 맞아 평상시 접하기 어려운 국가들의 연극 작품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대사는 알아 듣지 못해도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 그리고 웃음과 눈물로 관객은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는다. 다원화된 지구촌을 연극이란 매개를 통해 더욱 이해하자는 연극올림픽의 취지에 걸맞게 낯선 나라의, 그러나 낯설지 않은 연극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선 오는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르는 그루지야 출신의 리반 출라제가 연출한 ‘파우스트’게 눈에 띈다. 파우스트 박사에 관한 전설은 소설로, 연극으로, 오페라로, 영화로, 마침내 인형극으로까지 만들어졌다. 괴테가 19세기 초 세상에 내놓은 소설 ‘파우스트’는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리반 출라제(Levan Tsuladze)의 작품 또한 희극과 비극 사이의 절묘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악마와 거래를 한 파우스트 박사에 대한 괴테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이 작품은 불운한 파우스트의 행복과 불행, 사랑으로 인해 그가 받는 끝없는 고통과 죄책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들과 인형들이 함께 움직이며 조물주와 피조물의 경계가 사라진다.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작품에 섣불리 거리감을 둘 필요는 없다. 인형들의 움직임과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이고르 베레진 감독이 연출한 ‘지하철의 오르페우스’는 오는 23일부터 사흘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화려한 영상과 시각적 이미지가 펼쳐지는 지하철 속 공간에서 찾아 헤매는 운명의 여인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훌리오 코르타사르의 원작 ‘주머니 속의 원고’를 모티브로 인간의 삶에 대한 두려움, 완벽한 고독, 받아들일 수 있었던 행복에 대한 거부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의 구성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러 지옥(지하철과 유사한)으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의 신화와 비슷하다. 무대 세트는 지하철 안을 연상케 하는 빈 공간으로 꾸며져 있으며, 공간은 멀티미디어라는 시각적 이미지들로 꾸며진다.
현대 인도 연극의 중심이라 불리는 라탄 티얌이 연출을 맡은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도 주목을 끌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사흘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12월 뉴델리에서 개최된 입센 연극제에 참가해 큰 호평을 받은 인도 라탄 티얌의 최근 연출작이다. 서양 근대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릭 입센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When We Dead Awaken)’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위대한 조각가 루벡(Arnold Rubek)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상징주의적 필체로 묘사한 헨릭 입센의 마지막 작품이다. 티얌은 원작의 주인공 루벡(Rubek)을 라끄빠(Lakpa: 조각가)로, 과거의 여인 아이린은 샤끄땀(Shaktam: 형상)으로, 아내 마야는 샤켄비(Shakhenbi: 미녀)로 변환했다. 극단적인 욕망과 사랑은 광기와 파멸로 귀결되며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는 복합적 주제를 담은 입센의 원작은 인도 마니푸르의 신비한 분위기로 재탄생된다. 특히 유럽 작가의 작품이 인도 전통예술로 잘 각색된 작품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대화 부분은 대체 없이 사용하면서, 노르웨이나 유럽의 전통을 인도 마니푸르 특유의 문화적, 예술적 풍미를 지닌 새로운 것으로 재가공한 탁월한 연출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