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다 배경과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재벌이 망할 때는 언제나 음모설이 제기되고 당사자는 억울하게 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983년 해체된 명성그룹도 마찬가지다.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이 희대의 사기꾼이었는지 아니면 정권의 희생양이었는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논란거리다.
김 회장이 1983년 8월17일 탈세 및 업무상 횡령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당시 명성은 미스터리 그룹이었다.
명성은 1978년도 금강개발 등 5개 법인으로 자본금 총액 8,200만원, 외형총액은 3,80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결손이 1,300만원이나 됐다. 그러나 1982년에는 자본규모가 59억여원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늘었고 1983년에는 21개 계열사로 급속히 확장됐다. 문제는 자본금 59억원 중 21억원이나 잠식돼 자본조달이 어려웠을 텐데도 불투명한 자금이 계속 들어와 사업규모가 날로 성장했다는 점이었다.
이 같은 급성장 배경에는 뭔가 있다는 추측이 세간에 무성했다.
통일교가 뒷돈을 대고 있다느니,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가 뒤를 봐주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결국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세청이 칼을 빼 들었고 김 회장은 은행을 통해 조성된 사채를 끌어다 쓰고 이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회장은 대법원에서 1984년 8월14일 징역 15년, 벌금 79억3,000만원의 원심이 확정됐고 명성그룹은 공중 분해됐다.
그러나 당시 떠들썩했던 사건의 실체는 간단했다. 거액의 사채를 빌리고 탈세를 했다는 것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명성에 대한 정부의 단죄는 죄질에 비해 가혹했다. 애당초 국세청이나 검찰은 죄의 경중을 떠나 명성을 퇴출시킬 생각으로 덤벼들었고 결국은 의도대로 처리했다.
/박민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