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께서 총괄하는 참여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로드맵을 며칠 전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독은 경제난에 찌든 세모의 스산한 마음에 적지않은 위안이 됐습니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깨끗하고 효율적인 정부, 전국 각 지역의 고른 발전, 빈부격차와 차별시정으로 모두가 잘사는 세상, 사교육비 걱정 없는 교육, 안정적인 노후생활 등등. 로드맵에 담겨진 미래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희망을 갖도록 해줬으며 그래서 이것이 차질 없이 실천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로드맵 ‘한때의 정책’ 운명 안돼야
그러나 수도 이전 무산이 보여주듯 로드맵의 전도가 순탄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일부에서는 ‘로드맵 정부’라고 꼬집기도 합니다만 청사진 자체가 워낙 방대한 탓에 열심히 해도 참여정부 잔여 임기 내 모든 부문에 가시적 성과를 얻기란 힘들 것입니다.
결국 지속적인 추진력 확보가 필요한데 이는 정권의 연속성이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뿌리가 같아도 전임자와는 차별을 꾀하는 게 권력의 속성이고 보면 같은 성격의 새 정부가 들어서도 정책이 온전하게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권력이 반대세력에 넘어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로드맵은 ‘한때의 정책’으로 끝나는 슬픈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대통령 말씀대로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경제입니다. 경제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DJ가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김종필ㆍ박태준씨와의 연합, 이인제씨 출마에 따른 반DJ 표의 분산 등 더할 수 없이 유리한 여건에서도 그는 겨우 39만여표를 이겼을 뿐입니다.
YS정부의 파탄난 경제가 아니었으면 DJ의 승리는 어려웠다는 이야기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인데도 항상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 1위로 꼽혔으니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에 대한 향수는 더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암울한 시절 목숨을 건 투쟁으로 오늘의 민주화를 이뤄낸 사람들로서는 복장 터질 일이지만 그게 민심이니 어쩌겠습니까. 지리멸렬의 한나라당이 4ㆍ15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도 그의 그림자 덕분 아니었을까요.
경제 살려야 모두가 행복해져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이 위원장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통령과 내각의 경제팀이 있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지난 여름 어떤 세미나에서 터져나온 “청와대의 이정우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는 기업인의 발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왜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았을까요. ‘불경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까요. 그게 아니라 대통령의 경제상황 인식이나 경제관ㆍ정책에 이 위원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여긴 것이며, 이는 웬만한 사람이면 갖고 있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경제수석이 부활되고 이 위원장의 위상변화설도 있지만 경제주체들의 이런 시각은 아직 요지부동입니다.
이 위원장께서는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를 장기주의라며 구름에 가린 달로 비유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정책효과가 임기 말이나 다음 정권 초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습니다. 경제난의 고통이 벌써 2년, 여기다 2~3년을 더 힘들게 살아야 한다면 민심이 어떨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경제를 살릴 방안은 분명 있습니다. 나와 우리만이 옳고, 그래서 우리가 한꺼번에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강박적 사명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천천히 조금씩 하겠다는 자세로 가는 것이 역설적으로 로드맵의 빛을 오래, 크게 발하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경제가 살아야 대통령도 위원장도 성공하고 국민도 행복해집니다. 내년에는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