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9월 18일] '백지투표 1장' 혼란의 현대차 노조

현대자동차 노조가 집행부 선거과정에서 나온 백지투표 1장 때문에 재선거를 치르기로 하면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노조 선관위는 재선거 결정을 내려놓고도 정작 공식발표를 못하고 있다. 후보들이 이해득실을 따지며 주판을 튕기는 형국이다. 현대차 노조 현장조직(계파)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정치판'과 거의 흡사하다. 현대차 노조는 과거부터 '강경파'와 일종의 온건세력인 '중도ㆍ실리파'로 양분돼 있다. 투쟁(파업)으로 노조원들의 실리를 얻으려는 쪽과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22년 이력의 현대차 노조에서 중도ㆍ실리파가 선거에서 승리한 예는 별로 없다. 1차투표에서는 강경파보다 선전하지만 결선투표만 가면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만다. 서너개로 쪼개졌던 강경파 현장조직들이 결선투표에서만큼은 똘똘 뭉치는 반면 중도ㆍ실리조직들은 그렇지 못해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다. 1차투표에서 1위를 했던 이경훈 후보와 박빙으로 3위를 차지한 홍성봉 후보는 둘 다 '중도ㆍ실리'를 표방하는 조직의 수장이다. 이들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중도파 조직의 당선이 가장 높은 시점이라는 판단에 따라 후보단일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서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 이경훈 후보는 현재 홍성봉 후보가 소속된 '현장연대'의 수장으로 지난 2007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선거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홍 후보가 바통을 이어받아 선거에 뛰어 들었지만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눈 여겨볼 대목은 이경훈 후보는 2007년 선거를 끝으로 '현장연대'에서 탈퇴한 뒤 지금의 '전진하는 현장노동자회(전현노)'를 조직했다는 점이다. 이번 1차투표에서 이 후보와 홍 후보의 지지표를 합쳐 과반수를 훌쩍 넘긴 점을 감안하면 '중도ㆍ실리파'가 '강경파'를 처음으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살리지 못한 셈이다. 역사가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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