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엔高 못 버티겠다" 日기업 해외로… 해외로…

자동차 나가자 철강도 도미노 이전… 산업공동화로 몸살
IT·주류 업체들도 "비용 줄이자" 공격적 해외 M&A 나서




"국내시장에 국한됐던 NEC의 PC사업은 가격경쟁에 취약하고 투자여력도 충분치 않아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국내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경쟁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난달 28일 중국 최대의 PC제조업체인 레노보와 PC사업 합작사를 설립키로 합의한 엔도 노부히로(遠藤信博) 사장은 중국 기업과 손을 잡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한 때 일본 PC 내수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국내 사업만으로 성장을 거듭해 온 NEC가 시장의 경쟁격화와 내수시장 위축, 지속되는 엔고를 견디다 못해 내린 결정이다. 내수시장의 한계로 인한 성장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고개를 돌린 것은 NEC 뿐이 아니다. 신흥국 경쟁제품의 공세와 엔고로 인한 가격경쟁력 악화에 시달리는 일본 제조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주간 다이아몬드는 "엔고로 인한 비용부담을 덜기 위해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수백억엔을 투자해 해외 현지공장을 설립하거나 해외 부품조달 비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엔고현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인수할 수 있게 된 해외 기업들을 사들이는 등 해외사업 전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진출 속도를 올리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은 철강업계다. 국내 철강수요 위축과 엔고로 인한 국제 가격경쟁력 악화에 시달리는 일본 철강업체들은 외국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해외 현지 고로 건설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철강은 대표적인 탈 일본 도미노 업종. 철강업체의 주요 고객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겨가고 있는 점도 일본 철강업계가 해외로 발길을 뻗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1월 신일철이 인도 타타스틸과 합작으로 자동차용강판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400억엔을 투자하기로 합의했으며, JFE홀딩스는 지난 2009년 11월 인도 대형 철강사인 JSW스틸에 15% 가량의 지분을 투자, 합작 고로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의 부샨스틸과 기술제휴를 맺고 있는 스미토모금속공업도 현지 고로건설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수 소비에 의존해 온 맥주업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내리막으로 접어든 가운데 주요 주류업체들은 공격적인 해외 M&A 행보를 통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린홀딩스는 지난 2009년 초 필리핀의 산미구엘 맥주의 지분을 인수하고 호주의 2위 맥주업체인 라이온네이선을 완전자회사한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싱가포르 최대 음료업체인 프레이저앤 니브에 대한 출자를 단행했다. 아사히맥주도 중국 칭다오맥주에 대한 출자에 이어 호주 2, 3위 음료업체인 슈웹스 호주법인과 P&N를 차례로 사들이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혔다. 도시바의 경우 시스템 LSI(대?歷彫萱淏막? 생산을 삼성전자에 전면 위탁키로 하는 등 엔고로 인한 비용부담 증대를 계기로 해외 아웃소싱을 강화하는 등 사업재편에 나서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보다 공격적으로 엔고를 활용, 잇딴 M&A를 통해 글로벌 선두업체로의 도약을 노리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해외에서 활발한 인수활동을 벌여 온 에어컨 제조업체 다이킨공업의 경우 '세계 1위'로 발돋움하기 위해 미국 에어컨 메이커인 굿맨을 3,000억~3,500억엔에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년여 전 네덜란드의 프린터업체 오세를 인수한 것도 제품 라인업 확대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통해 프린터 시장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다이아몬드는 소개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 일본 기업들의 해외 M&A는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년 만에 최고 수준인 엔화 강세와 기업들의 현금동원 능력 강화에도 불구, 지난해 일본 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 규모는 총 344억달러로 지난 2008년의 742억달러에 비하면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UBS 도쿄지점에서 M&A업무를 담당하는 스티븐 토마스는 "지난해에 해외에서 시도된 일본 기업들의 M&A 성사비율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