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꾼이 일궈낸 그윽한 상징
이철수 판화전 전국 순회전시
화가 이철수는 농꾼이다. 이철수는 80년대 초에 목판화 작업을 통해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더니 충북 제천 박달재 아래로 삶의 터전을 옮겨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 이철수에게는 농부 목판화가란 칭호가 생겼다. 민중화가 보다는 어쩐지 더욱 친숙한 느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술은 여전히 낯선 세계입니다.그들을 시시한 TV 프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류로 취급하는 건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알 수 없는 난해와 믿기지 않는 권위로 버무린 현대미술 대부분은 제게도 벽입니다.
감미로운 것이 많아진 세상과 견주지 않더라도 미술은 참 매력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이철수의 판화 세계는 매우 독특하다. 시서화(詩書畵)가 함께 어우러진다고 해서 그의 그림을 문인화의 변종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아담하고 정감넘치는 필치에 툭 던져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매우 명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기쁨, 슬픔, 아름다움을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알알이 심어놓고, 다시 한번 쓰다듬고, 어루만져주자는 의도 자체가 정감이 넘친다. 작가는 자동차에 치어죽은 고양이 한마리를 그린다. 이런 글귀와 함께.
'아스팔트에서 속도에 부딪쳐 죽은 고양이를 만났다. 속도에 부서져버린 사람들은?'
그리고 집 위에 덩그렇게 떠 있는 초생달. '뜰에 마그리뜨의 달이 와있다. -잘 지내시는지? -아이구, 예! 그럭저럭 지냅니다.'
이철수의 그림에는 일상의 소품들이 덕담과 함께 놀고 있다. 풀도 있고 사과도 있고,만삭의 누렁이가 같이 있고, 먹다 남은 수박에 포크레인도 나와 한마디 한다.
작가는 여름에는 주로 농사일을 하고 눈 오는 겨울을 또 다른 경작의 시간으로 삼아 그림 그리기를 한다. 이철수는 "목판을 새기는 일과 밭을 가는 일이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그의 판화는 바로 노동의 산물이다.
"소통과 대화는 단절된 관계를 잇는 길이고 방법입니다. 미술의 역할은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합니다."
농꾼 이철수의 판화전이 전국을 일주하며 열린다. 22일부터 12월 16일까지 서울 학고재(02~739-4937)와 아트스페이스 서울(02~720-1524)에서 열리는 것을 필두로 부산 공간화랑(22일~12월 6일.051~803-4103), 대구 예술마당 솔(29일~12월 2일.053~427-8141), 전주 전북학생종합회관(12월 1일~20일. 063~273-4823), 청주 무심갤러리(11월 22일~12월 6일.043~268-0070) 등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이용웅기자
입력시간 2000/11/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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