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둑계가 외화벌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창호9단, 조훈현9단 등 정상급 프로기사들이 국제타이틀전의 우승상금을 싹쓸이하는 것은 물론 바둑 관광상품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한국관광공사 주최로 19일 한국기원 사랑방에서 열리는 「한·일 친선 바둑교류전」이 바로 그것. 일본의 바둑애호가 20명이 참가해 서능욱9단, 김수장9단과 지도다면기를 벌이고, 조훈현9단과 기념촬영 및 팬사인회를 개최한다. 또 한국여성바둑연맹 회원과 친선대국도 벌인다.
2박3일로 짜여진 이 상품의 가격은 80만원선. 일본 현지에서 3박4일에 40만원짜리 싸구려 한국여행 상품이 주로 팔리는 실정을 고려하면 상당히 고가상품이다. 그러나 관광공사는 일본인들의 반응이 좋아 앞으로는 여행객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일본 바둑팬들 사이에서 잇달아 세계 바둑계를 석권하고 있는 한국 바둑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도 지도대국 상품이 있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비싸다. 더구나 한국관광도 겸할 수 있어 다양한 테마여행을 바라는 일본인들의 구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측도 상품 개발에 적극 협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기 상품이 만들어지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당수 프로기사들의 호구지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상품이 아니더라도 한국 바둑계는 외화벌이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98년 LG배에서 일본기원 소속의 왕리청(王立誠)9단이 2억원의 우승상금을 챙겨 돌아가자 한때 사회 일각에서 세계대회에 대한 비판론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IMF시대에 한국이 일본·중국보다 훨씬 더 많은 국제타이틀전을 개최해 아까운 외화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곧 쏙 들어가고 말았는데 국제대회를 통해 한국은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8년 일본이 후지쓰배를 처음 창설한 이래 메이저 국제대회로는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 LG배 세계기왕전,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 중국이 올해 창설한 춘란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오는 24일 이창호와 조훈현이 결승1국을 벌이는 춘란배를 포함, 한국은 20번의 우승과 9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상금 40만달러가 걸려있는 응씨배는 세번 모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밖에 일본은 9회 우승과 12회 준우승을, 중국은 2회 우승과 8회의 준우승을 기록했다.
본선 대국료를 제외하고 우승·준우승만 계산한다면 외국기사는 한국에 와서 그동안 10억3,000만원의 상금을 가져갔다. 반면, 한국기사는 일본·중국 대회에서 140만달러와 9,400만엔을 각각 벌어들였다. 16일 현재 환율로 계산했을 때 약 25억3,000여만원으로 지금까지 15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셈이다.
이중 조훈현이 총 7억2,000만원에다 춘란배 상금으로 최소 5만달러(준우승 상금, 우승때는 15만달러)를 확보해 선두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유창혁 7억2,000만원, 서봉수 4억6,000만원, 이창호 3억8,000만원+최소 5만달러 순이다. 물론 한국 주최의 메이저 세계대회까지 포함한다면 이창호의 상금이 17억8,000만원으로 가장 많다.
이창호를 비롯한 막강한 정상급 기사들과 그 밑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는 10대 기사를 보면 앞으로도 한국의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이런 「흑자타령」은 「동양정신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바둑의 도를 벗어나는 계산법이란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바둑계가 세계 최강의 실력으로 동·서양에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있는 것은 확실하다. /최형욱 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