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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은꼴'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 지도자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아시아 변방에 있는 가난한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면서 '아시아 식 경제발전 모델'을 세웠다는 것이다. 화려한 성공 뒤에 드리워진 그늘도 같다. 국가를 이끄는 과정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이다. 두 지도자는 공통적으로 젊은 시절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경험했다.
가장 큰 닮은 점은 강력한 리더십이다. 리 전 총리는 1965년 싱가포르공화국을 세운 직후 '12345비전'을 내걸었다. 1명의 부인, 2명의 자녀, 3개의 침실, 4바퀴 달린 승용차, 500달러 주당 소득을 의미하는 야심 찬 청사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었다. "하면 된다"는 모토를 내걸고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했던 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끈질긴 추진력으로 조국 근대화의 토대를 세웠다는 찬사를 받는 것도 같은 점이다.
경제발전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함께 듣는다.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리 전 총리도 독재자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001년에는 홍콩의 중문대가 그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주려 하자 학생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세게 반대시위를 벌였다.
리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을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1979년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였는데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동행했다. 박 대통령은 두 사람 사이에서 통역까지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리 전 총리는 2000년 9월 출간된 회고록 '일류 국가의 길'에서 이날 만난 박 전 대통령의 강인한 첫인상을 강조하며 "한국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의지와 단호한 결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리 전 총리가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오른팔인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됐다.
두 지도자의 인연은 자식 세대로 이어졌다. 현재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는 리셴룽 총리는 리 전 총리의 아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 이어 청와대의 주인이 된 것과 같다.
리 전 총리와 인연이 있는 우리나라 지도자는 박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와 사상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리 전 총리는 아시아 국가들이 발전하려면 유교적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정치체계에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가 독재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지도자가 벌인 사상 논쟁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큰 화제가 됐고 지금도 종종 국제 심포지엄에서 화두로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