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령"(왼쪽)과 "페이스"의 한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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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공포 영화 흥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트로이’를 비롯해 ‘투모로우’ ‘슈렉 2’ 등 미국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박스오피스 1위를 사이 좋게 나눠 갖는 동안 공포영화들은 국산ㆍ외화를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죽을 쑤고 있다. 올 5월 ‘폰’이 이탈리아 박스오피스 전체 2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점을 감안하면 자칫 우리 영화의 주요 수출 장르인 ‘공포물’의 해외 경쟁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포영화, 잇단 흥행 실패 = 올 들어 개봉관에 걸린 공포물은 한국 영화 ‘페이스’와 ‘령’을 비롯해 총 4편. 이 가운데 현재 상영중인 ‘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배급사들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올 국산 공포물의 시작을 알린 ‘페이스’는 개봉 3주간 서울관객 15만명(전국 56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마케팅 비용 포함 총 38억원의 제작비가 든 걸 고려했을 때, 배급사가 자체적으로 예상했던 손익 분기점인 130만 명에 절반에도 못 미친 셈. ‘령’은 개봉 2주 동안 서울 21만명(전국 80만)을 동원해 성적이 조금 낫지만 극장 개봉으로는 역시 손해를 봤다.
외화 역시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데스티네이션 2’는 서울에서 겨우 5만4,000명(전국 13만명)만이 영화를 봤고, 홍콩영화 ‘디 아이 2’는 전국관객 35만 명으로 전편(전국 60만명)의 절반을 약간 넘기는데 그쳤다.
지난해 공포영화들이 인기몰이를 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의 부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작년 6월 개봉한 ‘장화, 홍련’이 전국 관객 330만명을 기록하면서 2003년 흥행순위 4위에 올랐고, ‘폰’(250만명)과 ‘여고괴담 3’(170만명) 역시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기존 방식 답습, 관객 기호 변화 = 공포물들이 잇달아 관객 동원에 실패하는 이유로는 우선 기존의 흥행 공식에 끼워 맞추는 안일한 내용 진행을 꼽을 수 있다. 7,8월 각각 개봉 예정인 ‘인형사’ ‘분신사바’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산 공포물들은 하나같이 스타급 여배우들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기존의 ‘여고괴담’ 시리즈나 ‘폰’ 등을 그대로 답습한 경우. 또 공포영화의 핵심인 반전이 앞뒤도 제대로 들어맞지 않다 보니 효과음향과 CG만으로 승부하려는 경향마저 드러냈다. 이러다 보니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손익 분기점은 높아지고, 결과적으론 관객 동원마저 실패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편에선 관객들의 영화 기호에 근본적 변화가 온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무섭거나 머리를 써야 하는 영화를 기피하는 것. 실제로 ‘어린 신부’, ‘아라한 장풍 대작전’ ‘여친소’ 등 가볍고 신나는 영화들이 대거 흥행에 성공했다. TV에서 또한 SBS ‘파리의 연인’ ‘발리에서 생긴 일’ 등 화려함을 강조한 작품들이 유난히 인기를 끌었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 백상창 소장은 “최근 한국 사회 가 어수선하다 보니 관객들이 극장에서 느끼는 공포조차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사회ㆍ경제적 위기감이 관객의 기호를 변화시켰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