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아일랜드 "구제금융은 No" '주권 침해·낙인 효과' 거부감 커

유로존 압박 지속…16일 EU 장관회의가 분수령



그리스발 유로존 위기가 아일랜드에서 다시 터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유로존 국가들이 아일랜드에 서둘러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강하게 거부하며 구제금융 가능성을 일축했다. 당장 국가 부도가 날 만큼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다 정치적ㆍ경제적 번영을 일군 지 겨우 20년 만에 내정간섭을 받는 처지에 놓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올 봄 그리스 재정위기로 패닉에 빠졌던 유로존은 아일랜드 때문에 유럽 전체의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구제금융 수용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아일랜드 구제금융 신청 여부는 16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가 1차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유럽 주요언론에 따르면 지난주 말 금융시장에 아일랜드 구제금융 신청설이 확산되자 아일랜드 행정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배트 오키프 아일랜드 기업ㆍ무역ㆍ혁신장관은 14일 오후 국영방송국 RTE와의 인터뷰에서 "아일랜드는 그리스와 같지 않다. 오는 2011년 중반까지 (만기국채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이 마련돼 있다"며 "우리는 스스로 경제를 잘 운용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구제금융을 받으면 문제국가로 찍히는 이른바 '낙인효과'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오랜 식민지를 경험한 아일랜드 역사적 특성, 재정긴축에 따른 경제 악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배트 장관은 구제금융은 주권침해라고까지 했다. 그는 "아일랜드의 주권은 아주 어렵게 쟁취됐다"며 "우리 주권을 아무에게나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는 "EU의 구제금융은 강력한 재정조건을 포함하고 있다"며 "한때 잘 나갔던, 넝마 위에서 부(rags to riches)를 이룬 국가에 굴욕감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신문은 "구제금융으로 아일랜드는 세금인상을 강요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세금인상 등 재정긴축은 아일랜드 경제에 치명적이다. 2ㆍ4분기 성장률이 -4.8%(연율)로 추락했고 실업률은 13%를 웃돌고 있다. 게다가 세금인상 카드는 해외투자 유치에도 차질을 빚게 한다. 1980년대까지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아일랜드가 2000년대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세금천국ㆍ기업천국'으로 불리며 미국 등 해외 기업을 대거 유치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세율인상이 강요된다면 아일랜드는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설을 다각도에서 부인하고 있음에도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소위 '시장 전염'이라고 불리는 도미노 현상으로 아일랜드에서 포르투갈ㆍ스페인과 그 외 다른 유로존까지 공포가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로존 주요국이 올 봄 그리스 사태를 경험한 데 따른 '학습효과'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에 대한 유로존 국가들의 압박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 압박의 선봉장으로 지목됐던 독일은 일단 압박설을 공식 부인했지만 유럽 채권시장 마비상태가 지속되고 유로화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는 이상 16일 열리는 EU 재무장관회의에서 아일랜드 위기 해결책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르코 안눈치아타 유니크레디트 런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각국 정부들이 어영부영하는 동안 시장은 계속 불안정할 것"이라며 "시장이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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