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식 자본주의냐, 유럽식 자본주의냐의 논란의 핵심에는 한국 사회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시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자료를 분석하면 한국의 분배 정도가 사회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연초에 발표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미국은 물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에 비해 크게 낮지 않다. 통계를 집계한 시기가 다소 다른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지니계수는 31.6으로 미국(40.8), 영국(36.0)보다 낮다. 지니계수가 낮으면 전국민의 평등도가 높은 것을 의미하며 높으면 그 반대임을 뜻한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노르웨이(25.8), 스웨덴(25.0), 독일(28.8)보다 높지만 프랑스(32.7), 스위스(33.1), 네덜란드(32.6)보다 낮다. 북유럽 국가에 뒤지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한 프랑스보다 낮아 한국의 위정자들이 경제력의 수준에 맞게 분배와 복지에 상당히 신경썼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배로 교수는 지난해 경제전문잡지 비즈니스위크지에 쓴 글에서 한국의 부의 평등 정도가 서유럽 수준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려면 유럽식 복지정책을 피하고 시장경제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며 “유럽식 복지제도는 시장경제원칙에 위배되고 성장을 저해하며 통일에도 큰 부담이 된다”고 주장했다.
배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복지우선 정책은 통일에 큰 장애 요소가 된다. 서독 정부는 통일 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동독 주민들에게도 서독 지역과 똑같은 복지제도 혜택을 부여했다. 독일의 통일비용이 엄청났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서독의 공장들이 저임금의 동독 근로자를 고용해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기대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동독 주민들도 복지혜택을 받기 때문에 굳이 낯선 서독 지역으로 이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분배정책이 통일 후의 엄청난 비용과 사회 시스템의 혼란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분배우선 정책에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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