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vs 공약 구조조정' 양자택일 안하면 나라살림 거덜날 판

박 당선인 공약 이행에 5년간 최소 135조
세출 구조조정으로 수십조원 마련 불가능
무리한 공약 포기하고 증세·추경편성 나서야 국민 설득 명분 생겨


정확히 100조원. 오는 2016년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해줄 지방이전 재원 규모다. 지난해에는 71조5,000억원이었다. 5년 새 무려 39.9%가 증가하는 셈이다. 그나마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나랏돈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을 전제로 지난해 짰던 로드맵(2012~2016년 국가재정운영계획) 기준이다. 다음달부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해 다시 살림살이를 짜면 실제 지출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이 공격적으로 약속한 각종 복지ㆍ지역개발 사업이 추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공약을 이행하는 데 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나랏돈은 향후 5년간 135조원(연간 27조원). 공약을 모두 실천에 옮길 경우 실제 집행 금액은 이보다 더 불어날 것이라는 게 재정전문가들의 우려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재정부담 앞에서 정부 살림꾼들은 깊은 한숨을 쉰다. 박 당선인은 세율 인상을 통한 증세 없이도 공약이행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매년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놓고 국회의 압박을 받아 늘릴 수 있는 순증 규모가 수조원 수준인데 연간 27조원씩 더 지출을 늘리라는 것은 정상 수단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라고 걱정했다.

박 당선인 측이 제안하는 공약이행 자금 마련 방안은 두 가지. 첫째는 기존의 정부 예산사업 중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자는 세출 구조조정, 둘째는 탈세나 선심성 비과세ㆍ감면으로 발생하는 세금수입(세수) 누수를 막자는 세입확대 방안이다.

그러나 당장 세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 우선 재정지출 중 상당액은 관계 법령 등에 의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사업이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의 총 재정지출(325조4,000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46.7%(151조9,000억원)가 의무지출액이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의 공약을 제외하더라도 정부의 의무재정지출 규모는 앞으로 2016년까지 평균 7.3%나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의무지출을 구조조정하려면 해당 재정사업들의 근거 법령을 개정하거나 폐지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의무재정지출을 제외한 나머지 재정사업(재량지출) 역시 재원을 삭감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이명박 정부가 최대한 '마른 수건 쥐어짜듯' 재량지출을 절감해 더 이상 줄일 여지가 많지 않다. 실제로 정부의 최신 중기재정계획을 보면 2012~2016년간 정부의 재량지출 증가율은 평균 2.1%로 설정돼 같은 기간 재정지출 총 증가율인 4.6%를 크게 밑돌 정도다. 여기서 더 줄이려면 각 지역별 민원성 사업들이 주로 대상이 될 것인데 여야 지역구 의원들이 호락호락 국회에서 통과 시켜줄 리 만무하다.

세입 확보안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비과세ㆍ감면으로 줄어드는 세수(국세감면액)은 총 29조7,633억원에 달한다. 그 중 정부가 세수확보를 위해 줄일 수 있는 국세감면 항목은 주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비과세ㆍ감면(조세지출)이다. 그러나 나랏빚을 줄이겠다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명박 정부조차도 조세지출액을 연간 수천억원씩 줄이는 데 그쳤다. 조세지출을 줄여 수조~수십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세지출액의 대부분이 농민ㆍ서민ㆍ중소기업 지원 등의 명분으로 입법화된 탓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연내 공약재원 마련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여권 내 중론이다. 추경예산을 짠다는 것은 결국 적자국채를 발행해 시장에서 돈을 빌려온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가채무는 늘어난다. 지난 2008년 309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445조2,000억원까지 불어난 상태. 공약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는 2016년 487조5,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게 재정부의 관측이다.

재정 전문가들은 나랏빚 증가를 최소화하려면 박 당선인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선공약의 대폭 구조조정, 혹은 대대적인 증세다. 어느 쪽이든 정치권과 여론의 역풍을 살 수밖에 없지만 상대적으로 대선공약 구조조정이 보다 현실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후 증세를 단행하거나 추경편성에 나선다면 비교적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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