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산책] 이인성 '경주의 산곡에서'

왠지 모르게 처연한 이 풍경화는 고도 경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네 땅이라고 하기에는 낯설고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주의보다 야수파나 후기 인상주의 같은 당시 막 도입된 새로운 미술 사조를 따르고자 했던 이인성(1912~1950)의 예술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일제 강점기 화가들의 등용문이자 경연장인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화단의 귀재'라 불리던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이인성이 유서 깊은 경주를 그린 것처럼 당시 화가들은 민족애의 표현으로 우리의 풍광과 민속적 소재를 많이 다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배경엔 우리 미술의 표현을 '조선의 향토색'으로 제한한 일본의 은밀한 식민지 문화정책이 깔려 있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질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 근대 미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글·사진=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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