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걱정일까(杞憂) 아니면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爆彈)일까. 정부가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논란은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정책의 주체가 누구냐, 서로 처한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시각은 엇갈린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얼마 전"경험적으로 보면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걸 막지 못하지는 않았고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위기가 됐다"며 "가계부채 위험수준에 대한 판단은 어렵지만 예견된 것이어서 감당 못할 리 없다"고 말했다. 드러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계부채 대한 시각 크게 엇갈려 전임 총재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부채문제이고 특히 가계부채가 문제"라고 걱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가 하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를 생각하면 밤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대책발표를 앞두고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ㆍ국제신용평가회사ㆍ국제통화기금(IMF)은 물론 국내외 민간연구소 등의 시각도 모두 제각각이다. 관건은 가계부실이 금융부실과 경제위기로 이어지지 않고 통제 가능하느냐의 여부다. 당국은 '그렇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크게 늘어났다. 금융사의 가계대출과 카드사의 외상판매를 더한 가계신용잔액만 지난 3월 말 현재로 801조원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자금순환표상 소규모 개인기업과 민간비영리단체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1,000조원에 이른다. 절대적인 규모만 보면 걱정스럽지만 이 정도의 빚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지난 3년간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기는 했어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데다 부채증가율이 적정성장률 수준 이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점도 당국이 가계부채문제를 자신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폭탄으로 보는 시각은 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가계부채가 조정을 겪은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급격히 증가했다. 규모도 그렇지만 증가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것이다. 부채의 내용 역시 건전하지 못하다. 은행권에서 돈꾸기가 어려워진 저신용ㆍ저소득계층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면서 가계대출이 16.7%나 늘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5.4%)을 크게 웃돈 것이 단적인 예다. 내수불황으로 영세자영업자들이 한계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대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부분 금리인상에 민감한 변동금리부와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내는 거치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한국 금융이 풀어야 할 숙제다. 변동금리부 대출은 시중금리가 상승할 경우 이자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고 거치식대출은 가계부채의 점진적 축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계심 갖고 연착륙 노력해야 정부가 어제 내놓은 대책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정금리와 원리금균등상환을 유도해 가계버블이 터지지 않도록 연착륙시키겠다는 의지다. 뒤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이번 기회에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확실해 제거해야 한다. 수십년간 굳어진 관행을 혁파한다는 점에서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금리의 점진적인 정상화를 통해 가계의 대출수요를 억제해나가야 한다. 부동산시장의 안정과 회복도 빼놓을 수 없다. 가계 역시 능력이상으로 빚을 내 투자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해법은 일자리창출을 통한 소득증대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규제혁파에 더욱 박차를 가해 기업투자확대를 촉진함으로써 가계의 실질소득을 끌어올리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