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들이 돈을 굴릴 데가 없어 아우성이다. 콜금리와 실세금리가 속락하자 거액의 단기유동성을 확보해 놓았던 금융기관들이 마땅한 자금운용처를 찾지못하고 있는 것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콜금리를 연 7%대로 떨어뜨린 데 이어 지난 7일 6%대로 내려앉자 금융기관마다 자금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그간 금융기관들은 다소 수익률이 낮더라도 부도리스크가 큰 회사채매입이나 기업대출을 줄이고 한국은행의 환매채나 통안증권 매입으로 근근이 버텨왔었다.
금융기관간 콜금리가 인위적으로 하향조정된 이후에도 일부 투신사 등은 운용처를 못찾고 남은 돈을 6%의 콜자금으로 빌려주어왔다.
다소의 역마진을 감수한 결과였지만 떼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콜금리가 실제 6%대로 내려앉자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돈을 굴릴 자산이 실종돼버린 것이다.
전에는 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단기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마저 발행이 끊겼다.
신탁제도 개편 등을 앞두고 은행들이 이미 과잉유동성을 확보해둔 상태이기 때문. 은행 입장에서는 운용이 문제일 뿐 더이상 자금을 조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투신사들은 그들대로 수익증권으로 들어오는 돈을 감당 못하고 있다.
타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고금리상품인 수익증권에 자금을 맡겨왔으나 단기금리의 속락으로 포트폴리오 구성마저 쉽지않다. 그렇다고 낮은금리의 콜로 과다 운용할 경우 역마진을 낼 것이 뻔하다.
금융계 관계자는 “6개월 미만으로는 투자할 대상이 없다”는 말로 금융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문제는 더이상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한마디로 돈을 굴릴수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이 자산딜러들의 심정인 셈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하듯 지난 7일 한국은행에서 실시된 3년만기 국관채 입찰에서 1조5천억원 전액이 연평균 10.47%의 금리로 낙찰됐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재정경제부의 국채매입 독려도 요즘에는 전혀 없다”고 전했다. 굳이 정부의 독려가 없더라도 국채가 나오기만 하면 받아먹어야 하는 것이 금융기관들의 직면한 상황인 것.
그도 그럴 것이 7일의 경우, 무위험자산인 국관채의 금리와 회사채금리와의 격차가 불과 0.18%포인트 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가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 연말까지 발행키로 한 국관채의 남은 물량 6조5천억원도 이에 따라 무리없이 소화될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전망이다.
남은 물량 중에는 5년,7년짜리가 있어 운용자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이 되지만 금리가 문제일뿐 소화는 무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5대그룹 외에 중견기업으로까지 흘러가는 현상은 목도되지 않고있다.
최근 일부 비우량 회사채가 발행되고 있으나 전혀 매입처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은 신용경색의 해소가 상당한 시간을 요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 채권 딜러는“우량 단기물은 전혀 나오지 않고있고 비우량물을 사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