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6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다른 기업에 대한 출자 한도(순자산의 25%)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존폐에 대한 논란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의 대기업정책 근간을 담고 있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마무리되는 올 연초부터 여당 내부에서 출총제 폐지 얘기가 나오더니 출총제 주무 부서인 공정위도 애초 예정보다 6개월 정도 빠른 올 7월부터 출총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공정위 등 출총제와 관련된 3개 부처가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회의에서 출총제 폐지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져 논의의 내용도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분위기다.
◇예정보다 빨라진 논의 속도
정부는 애초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끝나는 올해 4.4분기나 내년 초에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등을 평가한 뒤 출총제를 포함해 대기업집단 정책 전반에 대해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 `출총제는 올해 끝나는 제도', `폐지돼야 할 제도' 등 출총제 폐지를 기정 사실화하는 발언이 나왔고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정부 내부에서도 출총제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출총제 논란이 촉발됐다.
또 노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인 특강에서 "출총제가 기업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출총제 주무 부서인 공정위도 "출총제는 필요한 제도고 로드맵이 끝난 뒤에 시장상황을 평가해 존폐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고수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논의 시기를 오는 7월로 앞당기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출총제 논의가 하루 아침에 끝날 문제가 아니고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어차피 해야될 논의라면 빨리 시작해 소모적인 논란을 없앨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안 전제 폐지로 방향 잡는 듯
출총제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면서 논의의 방향도 정리되고 있다.
정부는 출총제 존폐에 대한 공식 입장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관련 부처들은 폐지하자는 쪽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출총제 폐지를 위해서는 도입 목적의 달성 여부를 지켜봐야 하고 다른 대안이 있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출총제를 도입한 것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지배주주가 순환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실제 지분율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소수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현재 경제력 집중 억제 문제는 출총제가 아니더라도 금융기관의 여신제도, 사외이사제 등을 통해 관리할 수 있다는 게 금융기관과 기업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수주주의 권익 침해 방지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대기업이 투자의 방해 요인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출총제를 존속시킬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처럼 기업의 출자를 제한하는 제도를 없애고 다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출총제를 언젠가는 없애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지난달 취임한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출총제를 대신할 대안이 있는 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폐지 시기.대안 마련 관건
이에 따라 출총제 존폐 논의 관건은 폐지 시기와 순환출자에 따른 소수주주의 권익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들은 공정위가 관련 부처, 시민단체, 연구소, 재계 등과 함께 구성할 시장경제선진화태스크포스에서 오는 7월부터 집중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폐지 시기에 대해서는 부처 내 의견이 엇갈린다.
재경부는 2007년을 주장하고 있고 공정위는 2008년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며 산자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효율적인 대안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대기업 총수와 일가는 5%도 안되는 지분을 갖고 계열사 지분 등을 통해 50% 안팎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어 소유지배구조 왜곡이라는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으로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을 찾아야만 출총제 폐지에 따른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출총제와 비슷한 `대규모 회사의 주식 보유총액 제한제도'를 2002년 11월 폐지하면서 제도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고 판단, 시장집중 규제와 소유집중 규제를 혼합해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기업집단 설립이나 전환을 금지하는 대안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