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대한민국 국채는 안녕한가

대외 지급능력에 국한돼 온 경제 주권 개념 확장 필요
유사시 안정성 유지 하도록 국채안정기금 등 마련을


미국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재무장관인 헨리 폴슨은 지난 2008년 가을 심각한 오판을 했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월가를 구제하는 것이 재무부의 임무가 아니다"며 구제금융을 거부한 것이다. 더 이상의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는 재무부의 방침은 치솟은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월가의 모럴해저드를 방관하지 않겠다던 폴슨 장관이 맘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중국의 미국 공채 투매사건이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국책 모기지기관인 페니매와 프레디맥 채권을 앞다퉈 매각하자 폴슨은 적이 당황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 국채와 다름없는 두 공채의 가격폭락은 곧 미국의 신뢰도 추락이자 달러패권의 붕괴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야당인 민주당이 주도한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TARP)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뿐만 아니라 법안처리를 간청하기 위해 의회 지도자 앞에서 무릎까지 꿇는 수모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의 차이나 쇼크는 그즈음 제2의 외환위기에 비견될 정도로 살얼음판을 걷던 우리나라에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줬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한국은행과 통화스와프 체결에 이르기까지 숱한 막후 스토리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한은 뉴욕데스크의 미 국채 투매다. 한은이 외환시장 방어용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포지션을 매도로 바꾼 것이다. 중국에 이어 한국마저 등을 돌리자 미 재무부가 FRB 설득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이치. 미 국채 투매가 한은의 대미 압박카드든 아니든 효과는 만점이었다.

지구촌 경제를 강타한 유럽 재정위기의 시그널은 유럽 국채시장에서 나온다. 국채 수익률 7%는 국가부도 여부를 가르는 마지노선으로 통한다. 이 선을 넘었던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은 예외 없이 구제금융을 받았다. 6%를 넘은 이탈리아는 매일 금리와의 전쟁을 치르는 판국이다. 나라살림을 거덜낸 남유럽의 모럴해저드는 자국 정치판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다름없는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시장의 혹독한 보복이 따를 뿐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던지는 시사점은 재정 건전성 확보와 포퓰리즘에 대한 경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채는 경제 주권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유동성 이탈 차원의 주식투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이 환율 조작국 운운하며 아무리 협박해도 굴복하지 않는 중국의 힘은 미 국채의 최대 투자국이라는 지위에서 나온다.

외환위기의 충격 탓인지 우리에게 경제 주권은 대외지급 능력의 문제로 국한되고 있다. 위기대응책도 보유외환을 충분히 쌓고 단기외채 비중을 줄여 외채 상환능력을 확충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대외 지급능력이 크게 개선된 점은 바람직하지만 이제는 경제 주권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상환능력의 확충에만 매달리는 것은 소극적 개념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를 최소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를 넘어 유사시 채권가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까지 확장해야 한다. 국채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재정 균형을 맞춰 가급적 적게 발행하고 일본처럼 내국인이 대부분을 흡수하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꼭 바람직하지도 않다.

발행 잔액은 4년 내리 재정적자에 400조원으로 불어나고 외국인의 급격한 매수로 2008년 7%인 외국인 비중이 20%에 넘보는 게 우리 국채 시장이다. 복지 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잠재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니 국채는 앞으로 더 찍어낼 수밖에 없을 게다. 저출산ㆍ고령화 추세에 대비한 지출수요 감안하면 현재 35%인 국가부채 비율이 오는 2050년이면 138%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쯤 되면 빚을 내 빚을 갚는 재앙 수준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2가지다. 나라살림을 알뜰히 꾸리거나 투매에 대비한 내부 완충장치 마련 외는 달리 방도가 없다. 나라곳간 사정은 알 바가 아니고 선심을 쓰지 못해 안달하는 게 정치권이고 국채안정기금조차 없는 게 현실이니 남유럽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광경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대한민국 국채에 묻는다.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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