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를 내릴 것인가 안 내릴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연초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이 법인세를 경쟁국수준까지 내리겠다고 말해 제1라운드가 펼쳐진 이 논쟁은 최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인하 발언으로 2라운드로 불이 번졌었다. 그러던 터에 30일에는 노무현대통령까지 가세했다. 제3라운드가 곧바로 시작된 셈이다.
노대통령은 30일 “(우리나라 기업들이)다른 국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당이면 1%포인트라도 유리하게 해줄 수 밖에(깎아줄 수밖에) 없다”며 법인세 인하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김 부총리가 법인세 인하 연내 절대 불가 입장을 밝힌 지 단 하룻만이다.
◇법인세 낮춰준다 = 노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과학장학생 장학증서 친수 및 격려다과회에서 꺼낸 발언만을 들어보면 법인세 인하에 대한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으로 해석된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투명한 시장질서와 규제완화를 수도 없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아꼈왔다.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생각은 취임하자 마자 법인세 인하를 약속한 김부총리의 말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정도로 견고했다.
법인세를 낮춰줄 경우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들이 혜택을 많이 보기 때문에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날 노대통령의 말들은 기존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무엇보다 시장의 힘을 강조했다. 시장의 힘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따져보면 오늘날 강력한 힘을 가진 파워게임의 장은 시장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우위를 가진 사람이 다른 제도들을 강요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고 “권력은 점차 기업으로 옮겨간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기업들이 하자고 우기면 정부가 싫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노대통령도 “단기적으로는 기업이 (정부에 의해)제약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정책에 의해 정부의 정책이 움직여 갈 수밖에 없다”고 예견했다.
◇청와대는 공식 부인 = 노대통령이 이날 쏟아낸 발언은 법인세인하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즉시 해명에 나서 노대통령의 진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을 부추겼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은 권력은 시장이 갖고 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든 예일뿐”이라며 “지금 당장 법인세 인하를 한다거나 그런 것을 시사하기 위한 얘기는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해명했다.
윤 대변인은 법인세 형평성을 강조해 온 노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게 아닌 가를 묻는 질문에도 “그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 말은 제가 직접 여쭤본 것”이라며 “법인세 시사나 그렇게 해석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얘기하셨다”고 덧붙였다.
◇법인세 정말 내려갈까 = 그러나 노대통령이 법인세를 내려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든 것으로 볼 때는 이전보다는 긍정적인 입장으로 다가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권오규 정책수석은 이날 오후에 열린 국정과제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노대통령의 법인세 인하 발언은 일반론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동북아 경제중심 과 각종 로드맵(이정표), 재정세제로드맵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외국이 투자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런 과정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언급이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권 수석은 그러나 “다만 지난 3월 김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발언에 대해 전체적인 세목을 보고 해야 한다고 말씀했을 때보다 전체적인 뉘앙스에서는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해석했다.
종합해보면 노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루하게 펼쳐지고 있는 법인세 인하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번에도 우왕좌왕할 경우에는 대통령이 괜히 나서서 긁어부스럼만 만들어놨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박동석기자, 권구찬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