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업은 하는 이와 받는 이, 보는 이 모두 행복하다. 누구나 늘리고 싶어한다. 요즘처럼 오랜 경기침체로 서민의 삶이 고달파질수록 복지 수요는 더욱 커진다. 문제는 돈. 한정된 예산으로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다시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런 고민의 대안으로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는 사회혁신채권(SIB)이 등장했다. 민간자본으로 채권을 발행한 뒤 민간단체가 사회사업을 벌이면 정부가 성과를 평가한 뒤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뉴욕시 청소년 교도소 출소자를 대상으로 한 교정 프로그램에 약 1,000만달러의 SIB를 발행했다. 출소자의 재수감률을 10% 줄이는 게 목표인데 이를 초과 달성하면 뉴욕시는 골드만삭스에 원금과 성과금까지 준다. 당장 예산은 더 들지 몰라도 범죄가 줄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으므로 뉴욕시는 예산절감 효과를 본다. 반대로 목표에 못 미치면 골드만삭스는 원금 일부를 돌려받지 못하므로 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이처럼 예산 사용의 효율성을 높여 '증세 없는 복지'를 가능하게 해줄 SIB 모델을 서울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성과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어르신 자살예방사업에 참여할 비영리단체를 18일부터 5월16일까지 인터넷(club.seoul.go.kr/ngo)을 통해 공모한다고 11일 발표했다. 총 사업 규모는 6억원이며 한 단체당 최고 사업비는 2억원이다.
지금까지의 민간위탁 사업은 시가 참여 단체에 무조건 약속한 지원금을 주는 구조였지만 이번 사업은 SIB 모델이 적용되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A단체가 어르신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2억원 규모의 사업을 신청한 경우 서울시는 초기 사업비의 50%인 1억원을 우선 제공하고 남은 1억원은 시가 민간과 함께 조성한 사회투자기금에서 융자를 받을 수 있도록 보증한다.
A단체가 사업을 진행한 결과 실제 자살을 줄여 목표를 달성했다면 시는 융자금 1억원과 함께 전체 사업비의 10%(2,000만원)를 인센티브로 준다. 거꾸로 성과가 나빴다면 시는 사업비의 5%를 뗀 9,000만원만 주기 때문에 A단체는 스스로 1,000만원을 구해 융자금 1억원을 갚아야 한다.
해외 SIB 모델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민간단체가 사업비 전액을 사회투자기금에서 빌려 써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첫 시도인 만큼 서울시가 초기 사업비의 50%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경쟁력 있는 민간단체가 공공서비스를 효율성 있게 수행하기 때문에 예산을 아낄 수 있고 사회문제 확대를 예방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필요한 예산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또 성과가 입증된 사회복지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확대돼 같은 예산으로 더 큰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황인식 서울시 행정과장은 "SIB 모델은 한정된 예산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적합한 수단"이라며 "서울시의 현실에 맞게 SIB 모델을 발전시켜 앞으로 모든 민간위탁 공익사업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