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찬물' 우려 불구 "건전성 악화 예상보다 심각"

■ 재정 비상… 내년 세출 5% 줄인다
IMF "2014년 국가채무 GDP 절반 넘어설 것"
"세입여건 환란때와 달라 재정지출 엄격관리를"
"경기판단 아직 불확실" 매우 조심스런 행보도



정부가 세입과 세출을 동시에 잡겠다고 나선 것은 재정건전성 악화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정확대와 세수감소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재정적자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국내외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오는 2014년 한국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재정건전성 회복 시나리오와 이번 금융위기 이후 건전성 회복 프로그램은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V’자 경기회복과 세출억제 정책 등이 맞아떨어지면서 위기발생 5년(2002년) 만에 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했지만 이번 금융위기의 경우 감세기조에다 경기회복 속도도 더딜 것으로 전망돼 재정건전성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세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세입여건이 외환위기 때와 다르기 때문에 재정지출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경기회복 이후 감액 추경 등 보다 적극적인 재정건전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재정건전성 딜레마 빠져=정부는 재정효과가 민간투자와 소비로 넘어갈 때까지는 현재의 재정확대기조를 이어갈 방침이지만 경기 불확실성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기에 대한 판단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중장기 재정운용정책 수립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도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8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부수법률로 향후 5년간 14조2,000억원 규모의 지방재정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기침체로 지방세 및 지방교부금 수입이 줄어들고 중앙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에 지자체들도 동참하면서 지방재정 악화는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아직 경기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은 시점에서 재정지출을 줄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민간에서 자생적인 소비ㆍ투자가 발생해야 자연스럽게 바통터치를 하겠지만 전혀 그러한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세출구조조정 등이 위기 이후 출구전략의 시작으로 비쳐지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세수 감소 막아라=정부는 경기회복과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괄적인 세제개편에 착수했다. 이미 관련, 태스크포스도 구성해 조세제도를 소득과세는 낮추고 소비과세는 강화해 효율성 측면에서 재정적자 해소로 방향을 틀 방침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를 ‘최대한 긁을 수 있는 것은 긁어낸다’는 의미로 ‘누룽지’에 빗대기도 한다. 그렇다고 감세기조에서 증세로 180도 돌아설 수도 없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감세보다 경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인해 줄어드는 세수부족이 걱정”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시작된 것은 할당관세 품목 축소다. 정부는 하반기 할당관세 품목을 30개가량 줄여 지난해 수준인 45개 수준으로 낮출 방침이다. 물가안정을 위해 관세율을 최대 40%포인트까지 낮춰주는 할당관세는 사실상 세금지원효과를 가져온다. 2007년에는 할당관세를 통해 8,000억원의 지원효과를 가져왔고 지난해에는 물가가 오르면서 1조원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재정비하기 위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비과세 감면 규모는 2004년 18조3,000억원, 2006년 21조3,000억원, 2008년 26조9,000억원 등으로 점차 늘어났다. 또 올해 말에 일몰되는 76개 감면제도도 최대한 줄일 방침이다. 반면 에너지 다소비 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세 과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존 지원하던 것을 모두 거둬들일 수는 없지만 추가적인 감세혜택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효율성 강화=최근 예산편성을 위해 재정부를 방문한 타 부처 공무원들은 “아예 10%를 줄이겠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짤 때 성과가 적은 사업은 축소ㆍ폐지하는 방식으로 세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재정지출이 크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신성장동력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다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사업에 대해서도 심층평가를 통해 사업수행 여부와 적정규모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지역사업을 관리하던 지역균형개발특별회계를 광역특별회계(5광역+2특별)로 전환, 세출 단일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광특회계를 통해 정부는 기존에 200개의 세부사업을 24개 정부 포괄보조사업으로 통폐합시켜 예산지출의 효율성을 높일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을 줄인다고 해도 지난해와 올해 많이 쓴 것을 감안하면 원래 기조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세출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 재정적자가 줄어들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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