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영섭씨 설계/한옥을 주제로 양옥은 지형에 순응/3대동거형 창출최근 건축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건축이 단순한 공학기술의 산물이 아니고 인간의 생활문화 전반을 담아내고 시대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라는 인식이 확산돼가고 있다.본지 건축면은 이같은 사회인식에 부응해 「신작감상」 시리즈를 신설, 무수히 쏟아지는 건축물들중에서 우수한 건축작품들을 선정, 설계에 얽힌 얘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편집자주>
동서양의 건축이 어울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위아래로 한몸으로 붙어 있다.
언뜻보면 무척 생소하고 보기가 부담스럽다. 단아하고 부드러운 한옥과 뾰족뾰족한 각진 지붕 형태를 한 첨단 양식주택이 머리와 하체로 묶인 한몸처럼 엮여있는 것이다.
중견건축가 김영섭씨(건축문화 대표)가 설계한 「삼청동 주택」.
삼청동 32호는 한옥이다. 50여년에 지어진 것을 이번에 김씨의 안목과 철학으로 개조된 것이다. 이 집은 3대가 어우러져 사는 집이다. 노부모를 모시고 중년부부가 살고 있다.
먼저 한옥 개조에 들어갔고 나중에 바로밑에 있는 양옥을 설계했다. 한옥은 지하의 살림공간과 지상의 주거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그 밖에 진입부와 주차공간, 기계실로 이뤄졌다. 진입로에서 한옥마당까지는 7m의 표고차가 있다. 이 고저차를 이용해 진입 레벨에는 주차장과 기계실을 배치했다.
한옥은 외형이 갖는 강한 특성과 형식의 주체성이 매우 강하다. 어떤 형태의 건축과도 공존하기가 어렵다. 이같은 성질을 잘아는 김씨는 결국 어색한 타협을 선택하기보다는 한옥과 양옥 모두를 주체화하든가 아니면 하나를 배경이나 기단 등의 부수적 객체로 만들기로 생각했다. 결국 상단에 위치한 한옥을 주체로 하고 자연스럽게 양옥은 지형을 순응하는 형상으로 배치했다.
앞으로 돌출된 양옥은 바로 옆의 바위를 모티브로 인용했다. 천정형태도 지붕형상을 그대로 이어 다각형으로 구성했다. 양옥은 다소 지대가 낮고 지하처럼 느껴지지 때문에 바람과 햇빛에 대한 배려를 많이 했다. 중심부에 커다란 천창을 유리로 만들어 바로 자연을 그대로 거실에서 맞을 수 있다. 이 방에 누우면 바로 「하늘과 바람과 시」가 느껴진다.
한옥의 당호는 익청각이다. 영남대 서경보 교수에게 특별히 의뢰해 받은 당호이다.
김씨는 요즘 바쁘다. 이 집을 개조하고 설계하면서 이동네 주변에서 조만간 한옥이 사라질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직접 건축주들을 만나 일일이 보존을 위한 설득작업들을 하고 있다. 이번 한옥 개조와 양옥 설계작업도 그 와중에서 얻은 결과였고 그의 노력으로 아름답고 기풍있는 집한채가 우리앞에 당당히 태어난 것이다.<박영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