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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3월 위기설이니, 다음은 상업은행들의 차례니 하는 흉흉한 예상과 소문이 무성하다. 미국의 44대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는 취임사에서 “시장의 힘은 부를 창출하고 자유를 신장시키는데 그 무엇도 필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감시의 눈이 없다면 시장이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혼란으로 빠져들고 시장이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할 때 한 국가가 더 이상 번영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성장만 하는 경제는 없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대통령이 자신들이 옹호하는 시스템의 한계를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성장은 빈부의 격차로 소외된 저소득층의 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해서도 필요한데 기실 이 과정에서 더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부유층이다. 빈곤층이 하나를 버는 동안 부유층은 열, 스물을 버는 게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를 좁히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빈부격차 해소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성장률에 목을 건다. 하지만 문제는 ‘하늘 아래 성장만 하는 피조물은 없다’는 데 있다. 지나치게 비대한 사람은 동맥경화나 고혈압 같은 질병으로 쓰러지기 일쑤고 공기가 주입되기만 하는 풍선은 터지고야 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미국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도 그 같은 섭리를 뒷받침하는 일례에 불과하다. 지난 1929년 대공황 이후 경기 사이클은 부침을 되풀이했다. 우리가 겪었고 극복해냈던 IMF도 그 같은 부침의 일단이었다. 이래저래 자본주의 경제는 얼마간에 한번씩 거품이 빠지는 홍역을 앓아야 유지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어려움이 혹독한 이유 하지만 우리가 이번 사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유독 혹독하기 때문이다. 한 기업인은 최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물론 일본도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은 1억3,000만 인구가 내수시장을 떠받치고 있으니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이 한국보다 덜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 같은 선진국들의 체감경기가 우리나라보다 나은 것은 대외의존도가 덜한데다 비교적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장과 조화를 이룬 복지의 구현은 선진국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다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도로와 교량ㆍ전산망 등을 구축해 통상과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보건복지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놀라움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태양력과 풍력ㆍ토지를 자동차 연료와 공장 가동 등에 적극 이용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한 이 대목은 요즘 이명박 정부가 외치고 있는 4대강 유역 개발 같은 토목ㆍ건설공사, IT산업, 저탄소 에너지개발 등의 화두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보건복지와 의료서비스 등 사회안전망의 개선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실수 되풀이 말아야 10년 전 환란이 나라를 할퀴고 지나간 직후 적지 않은 열패자(劣敗者)들이 국가와 사회라는 대열에서 낙오됐고 그들 중 일부는 홀로 또는 자녀와 배우자를 동반해 세상을 저버리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오늘 그때의 아픔을 반추하는 이유는 ‘우리는 환란으로부터 과연 어떤 교훈을 얻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든 기업이든 난관이 닥칠 때마다 비슷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을 적잖이 봐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같은 무신경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가 됐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또 그런 나라를 이끄는 정부라면 그 정도의 성숙한 모습은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