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관료는 무엇으로 사나

산업은행 총재 인선 과정이 난마처럼 마구 얽히는 느낌이다. 지난 주말만 해도 관료 출신 두 사람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 갑자기 상황이 바뀐 듯하다. 관료 출신으로 또 다른 제 3의 인물이 부상하더니 이제는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용설에 내부 승진 루머까지 나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성한 뒷말이 이어질 것 같다. 산은 총재 인선과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관료 대 비(非)관료’라는 뿌리깊은 이분법적 사고도 크게 작용한 듯싶다. 재경부 주변에서는 ‘산업은행 고유의 특성’을 이유로 “관료 출신이 총재를 맡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산업은행의 경우에도 다른 공기업처럼 관료와 민간 CEO를 같은 잣대 위에 놓고 판단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도 모피아(Mofia)에 대한 청와대의 견제 심리가 발동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부 공무원들은 “ ‘안티(anti) 관료 정서’가 어디 가겠느냐”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다. 심지어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함량이 떨어지는 사람까지 앉히려 하나”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올 정도다. 아마 재경부 관료들의 뇌리에는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인선 때의 악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하다. 사실 공무원들의 말을 듣다 보면 “이들의 뿌리 깊은 우월주의는 여전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오만함에 염증이 날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공무원들을 마냥 나무하기도 힘든 게 지금의 현실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이뤄진 인사들을 반추해 보면 “뭔가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인사권자가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 나아가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품게 된다. 관료사회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관료들을 백안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무원은 자긍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이들의 자긍심이 손상되면 국정 운영도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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