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이어 기초연금까지 다양한 복지정책이 잇달아 시행되고 있다. 복지를 더 확대시킬 공약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복지 정책의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커지는 가운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재정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ㆍ유아 보육료를 놓고 벌이는 정부와 서울시 간의 힘겨루기다.
최근 정부는 영ㆍ유아 보육료에 대한 국고 기준보조율을 10%포인트 상향 조정하고 지방소비세의 전환율 5%를 2015년까지 11%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육법 개정안대로 국고보조율을 20%포인트 올린 4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제 내년 예산안도 법 개정안대로 편성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서울시 간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7월 시행 예정인 기초연금 역시 정부와 지자체 간 부담비율을 놓고 다툼이 예고된 상황이다.
재원 분담을 놓고 벌이는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전쟁은 꽤나 오래갈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대선 당시 복지공약에 대해 왜 지자체는 조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공약 실천에 필요한 재원은 어떤 형태로든 지방이 분담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복지정책 자체에 대한 고민을 넘어 누가 복지를 책임지고 부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한 때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의 복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지방 수령에게 있었다. 마을마다 조직된 계ㆍ두레ㆍ오가통과 같은 소공동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복지문제를 지방 수령이 중심이 돼 해결했다. 중앙은 수령의 책임을 묻고 지도ㆍ감독했다. 다만 가뭄과 홍수ㆍ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전쟁ㆍ전염병 등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은 국고로 비축한 식량을 풀어 구휼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국가의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서구 역시 근대화 이전에는 교구(parish) 중심의 자치복지를 했고 교구가 구빈세를 징수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교구 간 격차를 줄이고자 구빈 행정을 중앙집권화하면서 국가복지가 확대됐다.
정당정치의 활성화로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선거과정에서 복지를 핵심이슈로 만들었고 그 결과 복지책임의 상당부분이 국가로 넘어가면서 가족이 담당했던 아이 돌보기와 노인 봉양까지도 국가가 담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재원 분담의 두 가지 극단적인 해법은 중앙이 100% 부담하거나 지방이 모두 부담하는 것이다. 100% 중앙복지를 하게 되면 지방에 내려줬던 재원을 중앙으로 환수하고 중앙이 지자체의 복지 수요를 엄밀히 계산해 돈을 배분하면 된다. 혹은 중앙이 주도하는 전국적인 사회보험조직을 통해 직접 집행할 수도 있다. 이러면 복지재원의 분담 문제를 놓고 갈등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100% 지방복지를 하게 되면 중앙은 사회보험을 제외한 복지공약을 내려놓아야 한다. 중앙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기본(national minimum)만을 약속하고 이에 걸맞은 재원만 지자체에 주면 된다. 기본을 넘어선 복지는 지자체별 사정에 맞게 하면 된다. 지자체 간 격차가 벌어지겠지만 지자체 내의 민간자원을 활용하거나 마을 단위의 자발적인 봉사와 참여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지방재정조정제도를 통해 중앙과 지방이 함께 부담하는 중간형태를 띠고 있다. 중앙은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을 통해 지방으로 재원을 이전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웬만한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하고 세분화됐다. 이 때문에 중앙과 지방은 복지비용 부담을 두고 계속해서 어려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복지정책의 근본을 따져볼 시기다. 민간 소공동체와 지자체, 중앙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