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막연한 뇌물 요구 공무원 무죄"

구체적인 명목이 없다면 공무원이 먼저 뇌물을 요구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뇌물과 관련한 약속의 ‘구체성’을 엄격히 따져 ‘유죄’ 판결을 한 1심을 뒤집은 것으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유흥업소 사장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른 동료에게 부탁해 도와줄 테니 1,000만원을 달라”고 한 혐의(알선뇌물요구)로 기소된 서울 중구청 세무과 소속 공무원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죄가 성립하려면 뇌물수수 명목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며 뇌물을 주는 자가 받는 자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이는 지난 2004년 대법원이 내린 특가법상 알선수재죄의 법리를 알선수뢰죄에까지 확대 적용한 것이다. A씨는 2007년 7월 북창동에 있는 한 유흥주점 주인을 만나 “세금 문제나 영업 허가 등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담당 공무원에게 부탁해 도움을 줄 테니 1,000만원을 달라”고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먼저 뇌물을 요구해 죄질이 좋지 않지만 실제 돈을 받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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