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아름답게 떠나는 일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상사는 후배 동료들이 아쉬워하고 국가 지도자는 국민들이 슬퍼한다. 언론도 그런 지도자들의 퇴임이나 죽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지난 2003년 주룽지 전 중국 총리의 퇴임이 그랬다. 그는 퇴임 연설에서 관료들에게 “인민 속으로 들어가 곤궁에 처한 군중의 입장에 서라. 그리고 민간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라”고 역설했다. 연설을 들은 참석자들은 2분 동안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고 그 내용은 전세계 언론에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 경제의 차르(황제)로 불리며 중국을 부흥시킨 그였기에 그의 이 같은 당부는 참석자들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타개는 미국민 전체의 슬픔이었다. 언론들은 ‘굿바이 레이건’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이달 초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들의 첫 토론회 장소는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 있는 레이건 대통령 기념도서관이었고 대선주자들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토론회에서 20차례나 레이건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그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퇴임도 아름다운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제가 실망시킨 국민, 저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던 국민, 그리고 저를 미워했던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89년 무혈혁명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평화적으로 붕괴시킨 뒤 무려 13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그의 퇴임행사는 TV를 통해 방영된 불과 5분짜리 대국민 연설이 전부였다. 실패한 것보다 공적이 더 많았음에도 그는 용서를 비는 겸허한 자세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참여정부도 임기 말이다. 대통령보다 대선 후보들의 동향이 언론에 더 크게 등장하고 국민의 관심도 상당 부분 대선후보 쪽으로 넘어갔다. 국민은 지금 이 정권의 정책보다 어느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이럴 때 새롭게 거창한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순수해도 그 자체로 오해를 낳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끄럽다. 대통령 임기단축을 둘러싼 개헌소동에 이어 기자실 통폐합 등 어느 누가 원하는지 알 수도 없는 임기 말 개혁 프로그램이 추진되고, 강행하겠다는 의지도 역력하다. 차기 정부를 위한 일이라고 강변하지만 어떤 차기 정부가 출범할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지금 상태로 그냥 넘겨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미 그려진 그림을 고치는 것보다 백지에 그리는 게 오히려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은 기간 동안 벌여놓은 일을 제대로 추스르고 새로운 일은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순리다. 추슬러야 할 일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다. 정치 개혁은 차기 정부에서 다시 추진할 수 있지만 경제는 나쁜 것이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다. 지금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내수경기는 이제 겨우 꿈틀하는 단계이고 수출경쟁력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 언제든지 다시 내려앉을 수 있다. 국내 연구소들의 회복전망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수출의 성장기여도 하락 등 위험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만약 올해마저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 정권 내내 경제 활성화를 이뤄내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양극화는 심화됐고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부동산 값은 여전히 높다.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을 못해 실업자로 내몰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주말만 되면 로또를 맞춘다. 4년여 계속된 이런 현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남은 임기 동안 할 일이고 퇴임 준비다. 그러면 지난 4년여가 아름답지 않았어도 남은 기간은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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