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금융 등쌀에 은행수익 추락] 저금리도 버거운데 정부 눈치까지… 은행 영업익 3년새 반토막

정치권 압박·안방 출혈경쟁에 수수료 현실화 안돼
청년희망펀드·녹색금융 등 정부 입김 거부도 못해
국가경제 기여도 곤두박질… 구조적 금융개혁 나서야




국내 은행산업이 마지막으로 호황을 누린 것은 지난 2011년이다. 당시 현대건설 주식매각을 통해 특별이익이 발생하고 전년 대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대손충당금 비용이 줄면서 당기순이익이 2007년 이후 4년여 만에 10조원을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이후 찾아온 저금리와 경기침체로 은행 실적은 속절없이 고꾸라졌다. 서울경제신문이 23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를 활용해 분석해본 결과 2011년 국내 은행의 각종 실적을 모두 100으로 볼 경우 지난해 은행의 영업이익은 48.46, 당기순이익은 56.07, 법인세 비용은 46.36에 불과하다. 주요 지표들이 모두 반 토막 난 셈이다.

일반 기업 같으면 대대적 구조조정이 단행됐겠지만 고용경직성이 강한 은행산업의 속성상 그조차 쉽지 않다. 금감원에 따르면 임원을 제외한 국내 은행 일반직원 숫자는 2011년 9만6,600명에서 지난해 10만6,900명으로 되레 증가했고 인건비는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상황이 일시적 충격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한 전직 수장은 "금융지주 회장과 임원들이 최근 연봉 반납으로 수십억원을 모으고 이를 통해 고용을 늘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전형적인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중요한 것은 은행산업의 체질을 바꿔 세금을 많이 내는 은행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금융개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의 수익성 악화는 일차적 요인이 저금리에 있지만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와 각종 '코드금융'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인하 압박으로 수수료가 크게 낮아진 자동화기기(ATM)의 운영 과정에서 은행은 매년 844억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치권과 당국이 불합리하게 압력을 넣어 전체 은행권에 피해를 준 '경남기업 사태' 또한 국내 은행산업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수수료 현실화와 수익구조 다변화, 관치금융 탈피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상업은행은 예대마진과 무관한 비이자이익 비중이 지난해 말 기준 37.0%에 달한 반면 한국은 9.1%에 불과하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린 '국내 은행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익구조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국내 은행의 대고객 수수료(송금 및 자동화기기 수수료)가 전체 수수료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6년 12%에서 2014년 7.5%로 하락했다"며 "감독당국의 지도감독을 통해 통제돼왔던 ATM 인출 수수료, 송금 수수료 등 대고객 수수료의 현실화가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비이자이익이 적어도 20% 수준까지 높아지지 않는 한 저금리 장기화 추세 속에서 은행이 돌파구를 찾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국내 은행의 인터넷뱅킹을 통한 타행 이체 수수료는 500원이거나 무료이지만 미국 씨티은행은 2만8,000원,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은 4만3,000원 등에 달한다"며 "원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수료가 은행 수익성과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수료 현실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처럼 아무도 나서기 힘든 구조라는 점이다.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여론과 정치권 압박에 취약한 금융당국의 생리, 관치에 길들여진 은행권의 무사안일주의와 국내 시장에만 주력하는 지나친 '안방' 경쟁이 모두 수수료 현실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계좌이동제 등을 앞두고 은행 수수료가 현실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고객 차별화를 하거나 ATM 공동경영 등의 방식을 통해 수수료 현실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글로벌 은행들은 자사의 고객 프로파일을 분석해 핵심 고객을 발굴하고 이들에게는 대출금리 감면이나 수수료 면제 등 파격적 혜택을 제공하지만 수익 기여도가 낮은 일반 고객에 대해서는 적정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것이 금융연구원의 설명이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에 더해 자산관리 등과 관련한 상담 예약 서비스도 보편화돼 있고 이에 따른 수수료도 챙겨 갈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이 최근 프라이빗뱅킹(PB) 업무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PB들을 육성하고 있으나 지금처럼 자문료가 전혀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PB의 자문 역량 또한 강화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은행권 안팎의 목소리다.

은행권의 각성과 함께 절실한 것은 금융당국의 일관된 규제완화 의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당국도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서고 있으나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금융지주회사 정보공유 제한 완화 등 금융권의 숙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은행 수수료 역시 당국이 자율화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중도상환 수수료 등과 관련해서는 엇갈린 시그널을 보내면서 은행권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날 금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정부에서 금융회사가 정보를 많이 보관하지 못하고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도둑이 금고를 털 때 아무것도 없게끔 하는 게 현재 정부의 금융보안 정책이 아닐까 한다"며 "정보활용이 이렇게 어려운데 새로운 수익창출 등이 얼마나 가능할지를 당국이 앞으로 주도면밀하게 보면서 개선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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