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주가지수가 900 포인트선을 돌파, 1.000 고지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던 지난 7월1일 영국의 BBC방송은 한국의 씨랜드 화재사건을 크게 보도했다.BBC 방송은 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 95년 4월의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일련의 참사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그리고 지난 6월 중국 상하이에서의 화물기 추락사고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년간 대한항공의 사고만으로도 800명의 목숨을 잃었다면서 씨랜드 화재사건을 이같은 대형 사건·사고의 연속선상에서 조명했다.
이 방송은 연쇄사건·사고의 원인이 안전보다는 이익에 초점을 맞춰온 한국의 개발지상주의에 있다면서 안전과 건설기준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어떤 일을 그저 마치기만 하면 된다는 「빨리 빨리 증후군」이 다시 도졌다는 것이 이 방송 보도의 결론이다.
씨랜드 사건을 전후해 월 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미스트 등 구미의 주요 언론들은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있지만 다시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고 사회 분위기가 이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헤이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12일자 뉴욕 타임스는 『아시아가 금융위기에서 급속히 회복되면서 장래를 위해 필수적이랄 수 있는 개혁에 대한 정치적 절박성이 고갈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특히 한국의 경제상황과 관련, 『주가상승으로 국내 수요가 높아지고 수출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가 아직 심각한 부채를 안고 있는 재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시장개방 노력도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으로 벗어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외국언론들이 최근에는 일제히 「코리아 배싱」(한국 두드리기)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빠르게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한국경제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경제위기 해소로 외국인들의 한국기업 매수 등 한국투자 여건이 악화된데 따른 「심술」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별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치성 소비와 여행, 전국민의 주식투자 열풍, 들먹거리는 부동산 가격 등을 보면 우리가 외환위기가 발발했던 2년전을 지나쳐 종합주가지수가 1,145.66포인트를 기록했던 94년 11월로 무려 5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일부에서는 『우리 경제의 거품을 걷어내고 구조조정을 보다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해석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각종 경제수치들은 어느 새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산업이나 기업의 구조조정은 하다가 말았고 국민의식의 구조조정은 여전히 먼 과거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경제성장이나 인플레 환율,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의 회복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뤄졌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또 빈부 격차의 확대, 실업 등으로 우리 주위에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이다. /IYCHA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