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지난 16일 여야 대표와의 3자회담 자리에서다. 꼬인 정국을 풀 계기로 기대를 모았으나 90분 내내 평행선을 달린 채 갈등의 골만 깊어진 3자회담에서 단 하나 새롭게 전해진 게 바로 증세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고수하던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복지를 위해 국민 공감대를 얻는다면'이라는 전제조건 탓이다. 세금 늘리는데 사회적 합의는 당연한 얘기고, 문제는 복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재확인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재정여건상 불가능한 복지공약의 수정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당장 내년부터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에 들어간다. 앞으로 4%대의 성장률을 기록해도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히 증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증세의 목적은 성장동력을 다지고 재정건전성을 되찾는 데 있어야 한다. 대선공약이기에 절대로 수정할 수 없다는 복지공약을 성역으로 놓아둔 채 증세에 나선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다. 세금은 세금대로 늘리고 성장과 재정안정까지 모두 날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대선 당시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연장선인 보편적 복지부터 수정하는 게 순서다.
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의 공감대'를 중시한다면 복지를 비롯한 공약가계부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성숙한 시민사회라도 증세는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증세 필요성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그보다 세출 구조조정과 복지공약 재조정이 우선이라는 여론이 이미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감는 것인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비과세 축소로 사실상의 증세가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비과세 축소와 증세는 별개'라는 말장난은 거두시라. 증세는 미래를 위해 고통을 나누겠다는 합의가 전제돼야 가능해진다. 국민에게 재정여건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정도다. 국민을 납득시키려면 공약부터 조정해야 한다. 공약의 권위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한국경제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