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재정경제부 브리핑실. 최중경 국제금융국장이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외환정책이 어떤 것인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게, 은밀하게 일하는 게 미덕인 국제금융국이 공식적인 브리핑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최근 환율이 속락하고 환율정책의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일자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은 `정부는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적정환율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너무 일방적인 방향이어서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시장의 평가와 정반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때문에 `환율과 관련된 몇 가지 오해에 대한 설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날 브리핑은 재경부가 의도했던 대로 `오해`가 풀리기 보다는 논란의 증폭으로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시발점은 전세계적인 달러 약세로 주요국의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 우리나라 원화만 유달리 약세를 유지하는 `나홀로 절하`논쟁이다. 재경부는 종가기준으로 원화가 지난해 0.5% 절하된 것은 우리 경제만 겪은`나홀로 불황`의 반영이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만 나홀로 호황이었던 지난 2002년에는 원화가치가 10.7%나 올랐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재경부는 특히 연평균 환율로는 원화 역시 5% 절상됐음을 강조한다. 개입하지 않았다면 원화환율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게 재경부의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바로 이 점을 공박하고 있다. 개입으로 원화환율을 지켜왔지만 `엄청난 절상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주호 HSBC 이사는 “발권력 동원까지 언급한 것에 대해 시장은 개입의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며 통화채 발행 급증에 따라 이자부담이 늘어나고 외환보유고 잉여자금의 운용수익도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이사는 “한국 외환당국이 일본처럼 속내를 안 보이고 노 코멘트로 일관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못하다”며 “정부가 이성을 잃었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개입을 중단할 경우 원화환율의 폭락가능성에 대해서도 시각이 정반대로 엇갈린다. 재경부는 현재 환율이 북핵과 내수부진, 카드채, 신용불량자 문제 등 경제의 펀더멘탈이 반영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개입한 효과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와 시장에서는 재경부의 논리대로라면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환율방어에 지난해 수백억달러가 들어간 점도 설명되기 어려운 부문이다.
금융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정부가 막은 환율방어의 둑이 무너질 경우 주식시장까지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르지 않아도 환율이 떨어지면 외국인은 주식을 팔아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계산으로 1,200억달러에 달하는 한국주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은 원화환율이 1원 떨어질 1억달러씩 이익을 얻게 된다. 이는 재경부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환율방어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논란은 점진적 하락유도여부로 이어진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의지가 강력한만큼 환율방어에 성공하겠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금리상승, 통화관리 어려움 가중, 기업의 자생적인 대응력 약화 등을 부작용으로 꼽았다. 밖은 추운데 안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정책은 단기적인 약발이 먹혀도 중장기적으로는 제살깎아먹기라는 것이다.
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점진적인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재경부도 이를 인정한다. 문제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재경부의 한 당국자는 “국제 외환시장의 생리에 비춰볼 때 `한국정부가 점진적인 하락을 용인한다`라는 신호가 나오면 즉각 공격의 대상이 된다”며 “강수로 대응하는 게 점진적인 하락을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시각차가 큰 만큼 정부와 학계, 시장의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환율의 움직임과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문제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외환정책은 시장자율화와 역행하고 있다”며 “누가 자본거래가 원활하지 않은 한국을 누가 비즈니즈 센터라고 인정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권홍우기자, 이연선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