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사회는 무식한 세상이다"

허버트 실러 지음 '정보불평등'현대는 정보화 시대이다. 정보화는 과연 인류의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시대적인 화두이다. 정보가 생산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 양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정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느니, 스스로 정보의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느니 하며 모두들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그 수많은 정보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분배ㆍ유통되는지 관심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이 애초에 생산과정에서부터 어떤 힘에 의해 조정된다면 정보 다이어트니, 정보 편집이니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비주류 지식인으로 꼽히는 허버트 실러는 자신의 후기저작인 '정보불평등'(원제:Information Inequality)에서 정보화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실러는 다니엘 벨, 앨빈 토플러 등이 유포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 대한 터무니 없는 낙관론을 비판하고, 그 대신 거대 기업들이 생산, 유통하는 '거짓된 정보'의 그늘 아래 숨죽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정보화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미디어 비평가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책에서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미국의 정보불평등과 그에 따른 사회불평등 심화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실러는 정보 불평등의 기원을 생산 과정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인물들이 어떠한 관계 속에서 정보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는 정보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출판계와 언론계가 정보생산의 불평등한 메커니즘을 극명하게 읽을 수 있는 경우. 현재 미국 출판계를 좌우하는 것은 일군의 대기업들이다. 출판할 원고를 고르는 일은 극소수에 의해 이루어지며, 책을 출간하고 서점에 배포하고 홍보하는 데 엄청난 자원이 동원된다. 언론 역시 스스로 거대기업이 됐거나 거대기업의 지배 아래 놓여졌다. 이렇게 사유화된 정보생산자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정보만을 생산하고 유통시키게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결국 미국의 문화 미디어 생산물들은 명시적인 감시 감독이 없이도, 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덜 노골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걸러진 후 대중에게 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실러는 이 시대 사람들은 정보에의 자유로운 접근 자체가 허용돼 있지 않다고 본다. 그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안녕과 복지에 필수적인 보건, 의료 경제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보존에 대한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반면, 상업적 이용자나 기업이 요구하는 값비싼 정보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의 거대 담배 회사가 기업 내부의 자료라며 고의적으로 흡연과 암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몇 년 동안 공개하지 않음에 따라 한 세대의 건강이 정보 독점에 의해 희생당하는 결과를 낳았던 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 정보 차단 역시 사회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주범 중 하나이다. 또한 실러는 정보화 사회를 장밋빛으로만 그리고 있는 일체의 낙관론에 쐐기를 박는다. 정보화 사회에서 사유화된 학교, 도서관, 미디어 등에 의한 보이지 않는 선별 기능은 사회적 불평등과 긴장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초국적 문화 대기업의 영향권에 있는 전세계의 인구는 기업의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의 독점과 왜곡, 그리고 세계적 불평등이 서로 악순환을 이루는 현시대의 현실. 실러는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고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 살고 있다"고 개탄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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