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천년여우 여우비

서정적인 2D 애니메이션 군데군데 '日 영화 냄새' 아쉬워


할리우드와 일본의 각축장이 된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천년여우 여우비'는 이 의문에 대한 작은 해답이 될 만한 영화다. 전작 '마리 이야기'로 안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평단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성강 감독은 이제 '천년여우 여우비'를 통해 상업 애니메이션에서의 가능성도 시험받는다. 일단 시각적인 면에서만큼은 도전이 분명 성공적이다. 남다른 서정성을 갖춘 세계적 애니메이터의 작품답게 2D로 그려진 그림은 아름답다. 할리우드의 매끈한 3D보다는 부드럽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란한 색보다는 은은한 맛이 있다. 배경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그림의 아름다움에 종종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1980년대 할리우드와 일본의 하청기지 역할을 하던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숨은 역량이 이 영화 한편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시각적인 면과 달리 내용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만 하다. 100년 묵은 구미호 여우비가 주인공. 인간의 나이로 10살 정도 된 사춘기 소녀 여우비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들과 함께 숲 속에 숨어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요요들 사이의 분란으로 '말썽요'가 가출을 하고 여우비와 요요들은 말썽요를 찾아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의 학교에서는 노총각 선생님 강 선생이 '왕따' 학생들을 위한 극기훈련 캠프을 진행 중이었다. 말썽요가 그곳에 있는 것을 알고 여우비는 학생으로 가장해 캠프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여우비는 인간들의 다양한 면면을 알게 되고 특히 싸움대장 황금이에게는 애틋한 감정까지 품게 된다. 영화는 구미호 전설이라는 국내관객에게 익숙한 한국적 소재를 가져다 현대적으로 변용 했지만 정작 전체적인 줄거리의 흐름과 세부적 연출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군데군데 느껴진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 이후부터의 진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물묘사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등 일본 영화와 닮은 구석이 종종 노출된다. 이런 점은 영화가 관객에게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적 정서의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던 관객들에겐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 특히나 연출자가 '마리이야기'를 통해 엄청난 기대를 안겨줬던 이성강 감독이라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더빙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아쉬움. 영화는 손예진, 류덕환, 공형진 등 인기 배우들을 동원해 목소리 녹음을 해서 스타마케팅 효과를 노렸지만 정작 이 배우들의 목소리는 기존 애니메이션 성우들의 목소리에 잘 녹아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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