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금융대전] 2. 외국은행 새시장 만들어낸다

세계 최대 은행인 HSBC는 본격적인 국내 상륙과 함께 새로운 금융기법을 대거 가지고 들어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바꿔 말하면 수신고 등 외형에서 국내은행과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시장을 만들고 이를 장악하는데 치중할 것이란 분석이다. 국내은행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선점하는 형식이 된다. 이에 따라 외형경쟁에만 관심을 쏟아온 토박이 은행들은 자칫하면 거대시장을 「눈뜨고 놓치는」 판국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 진출한 씨티 등 서구은행들은 수신이나 여신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들의 주시장은 인수합병(M&A)를 비롯한 투자은행 업무. 전통적인 일본계 은행들이 취약한 분야다. HSBC 역시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국내 은행들이 미처 진출하지 못한 업무」를 주력으로 삼을 것이 확실하다. HSBC의 최강점은 무역금융이다. 포페이팅(FORFAITING)이라 불리는 새로운 금융기법에서는 따를 자가 없는 최강 은행이다. 포페이팅이란 무역거래에 따른 환어음이나 약속어음 등을 해당업체나 거래은행으로부터 고정이자율로 매입하는 첨단 기법. 수출업체는 수출어음을 곧바로 현금화시킬 수 있고, 포페이팅 금융사는 위험을 담보로 할인금리(2~3%)와 환가료 등의 이익을 챙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국내은행의 신용장 매입이 줄어들자 일부 종합상사나 외국계 수출기업들이 직접 포페이팅 금융사와 접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챙길 몫이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HSBC는 국내 외환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 97년 12월에도 우리 은행들이 거절하는 수출기업의 신용장과 환어음 등을 인수, 짭잘한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은행들조차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3억달러 이상의 수출어음을 외국에 팔아치웠다. 한 시중은행 부설 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은행이라고 해서 포페이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자금을 얼마나 싸게 조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경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HSBC가 막강한 자금력을 내세워 공략할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신흥시장은 주택담보 대출(MORTGAGE LOAN) 부문. 김정태(金正泰)주택은행장은 『서구은행들이 모기지론에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조만간 주택저당증권(MBS) 유동화제도가 시행된다면 이들의 진출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기지 론 이란 주택자금 수요자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저당권을 설정해주고 그 대가로 장기(보통 30년) 저리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할부금융사는 저당권을 근거로 증권(MBS·MORTGAGE-BACKED SECURITIES)을 발행, 이를 유동화 중개기관에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형식이다. 지난해 「자산유동화 특별법」이 발효된데다 정부가 유동화 중개기관 설립을 서두르고 있어 이르면 올해중 모기지 론 서비스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채권 금리가 너무 높은데다 장기채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 주택은행 관계자는 『모기지 론 차입자의 부담이 현재 시중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보다 높다면 새로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을 각각 인수하는 HSBC나 뉴브리지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MBS를 외국에 내다팔면서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국내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고, 환율 리스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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