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년] 공기업, '쇠밥그릇'은 없다

「108 번뇌」공기업 직원들은 요즘의 상황을 이렇게 부른다. 108개의 공기업(정부 산하기관 포함)이 스스로 거듭나기 위한 번뇌에 빠져있다는 말. 『메가톤급 지각변동이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있는데 이를 구경만 하다가는 생존하기 어렵다.』(H공기업 K본부장). 한국전력을 비롯한 108개 공기업은 이미 운명의 심판대에 올라있다. 30만 공기업 가족들은 매각이나 자체 경영혁신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치열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산업의 쌀」철강과 「생활속의 산소」전력 등 각종 공공재를 생산하고 있는 공기업들. 이들이 없다면 국가경제는 당장 올 스톱이다. 전화나 가스 등은 이미 국민 생활의 필수. 공기업은 산업 자체의 공익성과 「민간이 사업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세워졌다. 지난 60~70년대에는 싼값에 공공재를 공급하면서 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우리 경제발전의 기둥이었던 공기업은 이제 「경제를 세운 공신(功臣)」의 리스트에서 빠질 신세에 처해있다. 이들을 수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공룡처럼 덩치만 컸지 건강상태는 좋지 않다는 진단이다. 공기업 직원들을 일컬어 「쇠밥그릇」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그래서 공기업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였다. 금융기관을 제외한 108개 공기업의 올해 살림규모는 100조원. 중앙정부예산(68조9,000억원)의 1.5배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나라살림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공기업을 팔아 100억달러(14조원)를 마련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렇게 마련되는 돈은 실업기금과 부실금융 정리기금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기획예산위원회는 지난 7월 3일 포항제철과 한국중공업 등 5개 공기업을 완전 민영화하고,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을 포함한 6개 공기업은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8월 3일. 공기업 자회사 가운데 31개를 민영화하고 13개 모기업과 24개 자회사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경영혁신을 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다수 공기업에서는 지금 「살 빼기 작업」이 한창이다. 곁가지 사업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기업 본래의 기능에만 충실하자는 취지에서다. 준공무원 신분은 정리해고의 회오리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30만 공기업 구성원들. 이제 쇠밥그릇은 없다.【한상복 기자】 공기업 개혁사례 ◇한국전력 『외국자본과 민간기업의 전력사업 참여를 대폭 개방하고 설비를 부분적으로 매각할 것입니다. 모든 투자사업의 수익성을 철저히 검증해 낭비를 막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지난 5월 18일, 제12대 한국전력 사장으로 취임한 장영식(張榮植)사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한전 직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기둥을 파내 외국이나 국내기업에 넘기겠다니 놀랄만도 했다. 이처럼 한전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어느 공기업보다 거세다. 한전은 직원이 3만8,000명에 달하는 초 매머드기업. 올해 예산만 14조8,400억원에 달하는 공기업의 간판이다. 새 정부가 한전 사장을 공개모집할 때부터 뼈를 깎는 개혁은 이미 예고됐다. 한전의 변화는 장사장의 취임 직후 그 신호탄을 올렸다. 전무급 고위간부 인사를 통해서. 한전 창사 이래 「첫 직제축소」「최대규모 퇴임」을 기록했다. 직제는 2부사장-1실-5본부-6사업단에서 2부사장-4본부-5사업단으로 축소됐다. 부사장 자리마저 내년부터 없어질 전망이다. 사업부문에 대해서도 군살 빼기작업이 한창이다. 정보통신사업과 해외발전사업을 대상으로 검토중이다. 정보통신의 경우 추가투자가 필요한 곳은 과감히 손을 뗀다는 것이 장사장의 방침이다. 해외발전사업도 달러를 써야 하는 것이라면 모두 중지할 계획이다. 군살빼기를 하면 경영효율도 높아지지만 재무구조가 개선된다는게 장사장식 발상이다. 한전의 부채는 30조원. 이 가운데 외채가 100억달러로, 1년동안 원리금만 20억달러가 필요하다. 따라서 수익이 즉시 발생하지 않는 신규사업을 전면 유보하고 추가투자가 필요한 사업을 중지한다면 새로 빚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장사장은 발전과 송·배전 등 3개 사업을 분리한다는 장기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부문별로 견제를 유도해 경영합리화를 꾀하겠다는 포석이다. 한전의 변화노력이 의도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한전 노조원들로 구성된 전국전력노조연맹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장영식선장」의 지휘하의 한전호(號)가 어떻게 풍랑을 헤쳐나갈 것인지 더욱 주목을 끈다.【한상복 기자】 ◇한국중공업 지난 9월1일 경남 창원의 한국중공업 대운동장. 윤영석(尹永錫) 한국중공업사장은 경영혁신운동인 MAP(MANAGEMENT ACTION PLAN) 선포식에 모인 8,000여명의 전임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중공업은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변화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은 그 강도나 본질면에서 그동안 겪었던 경영상의 시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지난 80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일원화조치로 20년 가까이 「무풍지대」에서 성장해온 한중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변화다. 이날 윤사장이 한중의 위기를 강조한 것은 회사경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데다 최대고객인 한전이 경영난으로 발전소 공사연기·축소로 일감이 줄어들어 생존을 위한 변화가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해외금융조달의 어려움, 원부자재 가격상승, 주력시장인 동남아시장의 붕괴 등 해외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어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맵운동은 이같은 사상 최악의 국내·외 경영여건에서 한중이 찾아낸 경영혁신운동이다. 윤사장은 맵운동의 목적을 종합관리체제 확립과 수익중시 경영, 국제경쟁력 강화로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처하고 세계기업으로서 기반을 구축하는데 두었다. 한중은 개혁을 통해 매년 경상이익률 5%, 매출원가율 85%, 생산성향상 15%, 원가절감 1,000억원, 2002년 1인당 매출 5억원 등을 이룬다는 계획이다. 윤사장은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시위주의 경영체제에서 과감히 탈피해 수익중심의 내실경영으로 전환하고 고비용·저효율 구조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회사조직을 보다 생산적이면서 결집력있는 조직, 상호협조적이며 보완적인 조직으로 운영하면서 우수인력을 적극적으로 발탁하는 인사정책을 펼쳐 내부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중의 미래가 걸린 맵운동. 이제 시작이다.【채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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