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영웅전] 비로소 항복

제3보(88~123)

수순은 한참 더 계속되었지만 흑89가 놓인 시점에서 모든것은 끝나 있다. 백대마의 목숨이 끊어진 것이다. 백90 이하는 그저 두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훈현은 선불맞은 맹수처럼 사납게 몸을 흔들며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나 김주호의 응수는 냉정하고 침착했다. 흑123을 보고 비로소 항복. 김주호의 연승기록은 19연승으로 늘어났다. 비록 김주호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으나 조훈현은 왕위전 리그에 남은 모든 판을 이기고 도전자결정전에서 이세돌마저 꺾는 데 성공한다. 이세돌에게는 8연패하다가 모처럼 이긴 것이었다. 그러나 본선리그를 주파하는 사이에 힘이 다했는지 이창호와 벌인 도전기에서는 1승3패로 물러나고 만다. 기성전 도전기에서는 2승3패로 역시 물러나게 된다. 2003년 10월 16일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 삼성화재배 8강전이 열렸다. 대회 3년연속 우승을 노리는 조훈현은 중국의 후야오위(胡耀宇) 7단과 맞붙었으나 무력하게 패퇴하고 만다. 계속해서 명인전 도전자결정전이 열렸다. 상대는 이세돌9단. 이 대국에서 조훈현은 이세돌의 대마를 잡고 이겨 도전자가 된다. 그리고 이창호와 5번기를 벌여 2대3으로 패한다. 마지막 판은 딱 반집 패배였다. 그 바둑을 끝으로 조훈현은 천천히 사진기자들의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평범한 9단진의 한사람으로 내려앉았다. “조훈현은 아직 최정상급 기사지요. 하지만 10대나 20대의 청소년 기사들이 이젠 그를 만나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어요. 그도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물론 이따금은 큰기침을 하겠지만….” 조훈현의 옛날 라이벌 서봉수가 하는 말이다. 123수끝 흑불계승.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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