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상속, 글쎄.’ 신세계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1조원의 세금을 내겠다고 밝히자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영권 승계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기업들은 느닷없이 내밀어진 신세계의 ‘법대로’ 카드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15일 삼성ㆍ현대차ㆍLG 등 주요 대기업들은 신세계의 ‘경영권 승계 공식화’로 인한 파장과 앞으로의 진행상황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재계는 일단 신세계의 ‘증여세 납부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의사표명에 대해 “광주신세계 지분과 관련해 정용진 부사장의 편법증여 논란으로 참여연대와 맞고소를 벌이는 상황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내놓은 포석”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찌감치 정면돌파를 시도하면 편법시비도 없애면서 ‘윤리경영 모범기업’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쌓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현 상속ㆍ증여세가 현실을 무시한 법이지만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경영권 승계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더 이상 신세계를 둘러싼 잡음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신세계가 야속하다. 낼 것 다 내고 떳떳하게 경영권 승계를 진행하겠다는 데는 반대하지 않지만 상속세 완화를 위해 재계가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갑자기 신세계가 김을 빼는 카드를 던졌기 때문이다. 실제 전경련과 기업들은 현행 상속ㆍ증여세가 현실을 무시한 것인데다 외국의 경우도 상속세를 폐지하는 추세인 만큼 상속ㆍ증여세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겉으로는 신세계의 결정이 당연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속으로는 앞으로 경영권 승계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돼 답답해하는 모습이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발행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조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삼성의 경우 상속되면 상속세는 당연히 낸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증여는 결코 없을 것”이라며 “상속된다면 상속세는 당연히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증여ㆍ상속세를 내느냐 마느냐보다 순환출자로 묶여 있는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게 삼성의 속내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모두 이재용 상무에게 넘어간다 해도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없다면 그룹 지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상속ㆍ증여세를 낮추기 어렵다면 기업의 소유권이라도 보장하는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며 “세금을 낸 후 지분이 낮아져 경영권 위협을 받는다면 기업인은 기업의 성장보다 당장 주머니 속의 현금을 더 바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