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미래에셋의 소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다른 운용사를 추종해 보수를 인하하지 않습니다."

지난 3일 상장지수펀드(ETF) 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이 ETF 보수를 내리겠다고 발표한 뒤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인하계획을 물었더니 담당부서에서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투자자 저변확대와 건전한 ETF 투자문화 조성을 위해 지속적인 인하를 검토하겠지만 타사가 보수를 내렸다고 해서 추종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옹골찬 소신은 하루 만에 뒤집혔다. 4일 미래에셋이 '업계 최저수준 ETF 보수인하' 보도자료를 내면서 슬그머니 말을 바꾼 것이다. 오히려 코스피200을 추종하는 ETF의 총보수를 연 0.09%까지 대폭 내리는 '과감한' 모습까지 보이며 다른 운용사들에 그야말로 '멘붕(멘털 붕괴)'을 안겨줬다.

변명은 군색했다. 미래에셋 측은 "인하계획은 있었는데 1위 업체가 먼저 내리다 보니 급하게 발표하게 됐다. 삼성자산운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남이 내린다고 따라서 인하하지 않겠다던 소신은 수사에 불과했던 것일까. 건전한 투자문화를 내세우며 철학과 소신을 강조하다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꾼 것은 추종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국내 ETF 보수 수준이 해외 ETF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운용사와 투자자들도 시장규모와 상황을 봐서 보수를 단계적으로 인하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금융당국까지 나서 보수인하를 유도하고 있고 운용사들이 잇따라 관련발표를 하는 마당에 미래에셋만 나 홀로 높은 보수를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장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에셋의 이번 ETF 보수인하 발표가 달갑지 않은 이유는 한가지. 소신 없는 말 바꾸기와 타사의 보수인하에 대한 맞불대응 정도로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나는 '도전(challenge)'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한 적이 있다. 도전을 위해서는 본인만의 철학과 소신이 필요한 법이다. 미래에셋은 ETF 보수인하와 관련해 지난 이틀간 보여준 모습에 어떤 소신과 철학이 들어 있었는지 곱씹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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