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이산가족 상봉과 진정성 게임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3년 4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이뤄졌다. 그간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국면 전환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현 정부가 북측에 요구한 '진정성'의 상징적 관문이었다. 줄곧 진정성을 강조해온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의미 있는 첫 성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상봉을 자신들의 '통 큰' 양보로 설명하는 북한에 진정성은 고도의 정치화된 남북 게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남북 간에 펼쳐질 진정성 공방, 진정성이라는 게임의 여정이다.

북, 5.24조치 해제 요구 불 보듯

우리 정부의 진정성 요구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통 큰 양보'로 수용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에 이제 진정성은 우리 정부의 차례다. 이번 상봉 이후 고위급 회담을 약속한 만큼, 북한은 여기에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실리가 쉽게 충족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남측의 진정성을 역으로 탓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키 리졸브 훈련이 남한의 진정성을 비난하는 소재로 다시 등장하고 다시 서해가 긴장으로 출렁일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조건 없이' 수용한 통 큰 양보는 이후의 조건제시를 위한 명분 쌓기일 가능성이 높다.

국방위원회가 나서서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한 것은 애초부터 북한이 이번 상봉을 남측의 진정성 요구를 돌파하는 정치적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전략 속에서 바라봤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순수성 여부만을 문제 삼고 있을 수는 없다. 사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북측의 진정성만을 탓하며 정치적 실익이 나지 않는다고 남북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DMZ 평화공원이나 유라시아 철도 구상도 남북관계 변화 없이는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남북관계 복원 없이 북핵 문제를 푸는 대화의 진전 역시 힘들다.

그럼에도 긍정적 시나리오가 가능해 보인다. 키 리졸브와 독수리 연습이 끝나고 5·24조치 4주년을 전후해 남북한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한 전격적인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이다. 사실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매우 계산적인 진정성이 필요하다. '통일 대박론'은 한국의 경제적 불황을 타개할 경제적 '특수'로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는 진보 진영도 통일 대박론을 잠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물론 진정성이 의심되는 흡수통일론에 북한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은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좀 더 현실적인 실리를 위해서 충분히 대박론과 함께하는 유화국면을 용인하고 대화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대화 채널로 실리에 집중해야

어떻든 통일 대박론의 현실화는 5·24조치의 일정한 해결 없이는 국민들에게 현실감을 갖기 힘든 부분이 있다.

사실 진정성은 아무런 계산 없는 행동이나 순수함이 아니다. 진정성은 서로의 계산과 입장·실리를 적절하게 드러내고 상호 합리적으로 절충하는 정치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치적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남북이 서로 진정성을 검증하는 게임에 갇혀 언제든 비난의 자세로 돌아앉을 수 있는 명분 쌓기로 진정성을 소모적으로 쓰는 것은 서로에게 실익이 되지 않는다. 진정성이 서로의 관계를 푸는 명분의 논리라면 상호 실리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공감이 필요하다.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게임의 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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