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홍콩영화 `유리의 성'

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날, 청명한 기운이 넘치는 밤하늘 가득히 불꽃이 만발했다. 한 세기가 넘게 떨어져 있던 동족이 하나가 되는 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자필반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 되는 법.바로 그날, 하늘에는 두 영혼이 함께 하는 불꽃이 있었다. 데이빗과 수지는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가루를 하나의 불꽃에 담아 하늘에 쏘아올린 다. 뉴턴의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이 그들의 가루도 결국 홍콩의 땅과 물 위에 뿌려질 것이다. 홍콩과 중국이 다시 하나가 되는 날, 데이빗과 수지는 부모들의 천장을 치르며 사랑이 얼마나 기이한 인연을 만들어내는지 가슴깊이 느낀다. 데이빗의 아버지 허항생과 수지의 어머니 연루는 97년 제야의 축포소리를 함께 들으며 런던시내를 질주하다 자동차가 전복돼 죽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들의 부모가 이국 땅에서 그것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망한 사실을 통보받고 놀라는 데이빗과 수지. 허항생의 친구 변호사에게 두 사람 명의의 집이 홍콩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데이빗과 수지는 빈 집을 정리하며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를 배워가는 그들. 사연은 그로부터 2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주윤발 주연의 멜로물 「가을날의 동화」를 만들었던 홍콩의 여류감독 장완정이 연출한 「유리의 성」은 교과서적인 애정영화이다. 잘생긴 남녀 주인공, 깨끗한 풍경, 아름다운 음악,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죽음. 그런 것들이 마치 유화로 만든 병풍처럼 질서정연하게 펼쳐진다. 20년전 홍콩대 신입생이었던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의 종을 뺏으러 가던 날, 자랑스럽게 종의 쟁탈자로 등장한 허항생은 환환 미소를 터뜨리던 생머리 여학생 연루를 만난다. 불꽃같은 정열은 청춘에게 예정된 수순. 하나 다른 점은 항생과 연루는 처음부터 죽음의 선을 밟았던가. 어느날 시위사건으로 항생은 구속되고, 홍콩에서 근거를 잃은 그는 프랑스로 날아간다. 지독히 사랑했으면서도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했던 데이빗과 수지는 뒤늦게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데…. 화면은 전체적으로 맑은 비를 맞은 뒤처럼 청명하고 주인공들의 이목구비는 붉은 장미처럼 위태로운 에너지가 넘쳐보인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열정은 맹목적이고, 마천루의 유리창에 비춰진 또다른 마천루의 그것처럼 그들의 운명은 신기루의 운명을 따르다가도, 어느새 청죽의 미덕에 충실하다.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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