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찬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 출간

사물 순수성 그대로 드러내는 고요한 시선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중에서>

최근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황인찬(24ㆍ사진) 시인이 자신의 시 55편을 묶어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 펴냄)'를 펴냈다. 김수영문학상은 시인 김수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81년 민음사에서 제정한 문학상으로,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김광규의 '아니다 그렇지 않다', 최승호의 '고슴도치 마을' 등이 앞서 이를 통해 등단했다.

황인찬의 시는 고요하다. 애초에 어떤 감정의 변화도 경험해 본 적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들은 격앙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거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등단 후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첫 시집을 냈지만 거의 전편이 고른 완성도를 자랑할 뿐 아니라 담백하면서도 유려하게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에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유한하고 깨지기 쉬운 사물을 황인찬의 시는 초역사적이고 초자연적인 사물로 형상화한다.

"혼자 집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한 번 마시면/멈출 수 없었다//(중략)아무도 없는 집이 심심했다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고/살아 있는 사람도 없었다" 또 다른 시 '물의 에튜드'에서는 이 세상에 거의 혼자 내버려진 듯한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하지만 담담하게 드러낸다.

박상수 문학평론가(시인)는 작품 해설을 통해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감정으로 대상을 드러내는 대신 사물의 사물성과 순수성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보존하려는, 김춘수로부터 시작된 한국 시의 오래된 반인간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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