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망 안긴 원자력협상, 미국 태도 변해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또 결렬됐다. 내년 3월 만료 예정인 현 협정을 2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지만 우리가 우라늄 저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핵 비확산 의지가 워낙 강한데다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로서는 협정시한 연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자칫 반미감정이 야기되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경우를 우려하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연장안은 우리의 에너지 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채 현상을 유지하는 미봉책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미국이 앞으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우리 쪽 협상전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한미 원자력산업계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실리를 추구하는 방안은 없었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정부의 핵심 논리는 두 가지였다. 가동 중인 원전만도 23기나 되고 수출까지 하는 세계 5대 원전강국이 원전연료를 직접 생산(우라늄 저농축)할 권리가 없어 외국에서 사와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시설 4곳이 모두 포화상태가 되므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우라늄 저농축 권한을 한국이 갖더라도 대규모 고성능 원심분리기가 없는 한 원료를 직접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고 한다. 일리가 전혀 없지 않기에 양쪽은 평행선을 달렸다. 일각에서 외국의 농축시설에 상당한 지분투자를 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차제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상연장 상황에 대비하되 양국 정부가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호혜평등의 원칙과 국민감정이다.

일본과 인도에도 인정해주는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권리가 유독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미국에 대한 국민감정도 나빠질 게 뻔하다. 미국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압박에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의 에너지 주권을 갖자는 한국민의 권리를 가볍게 여겨서는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