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개혁대상 아닌 國富창출 주역"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차기정부가 각종 규제철폐 등을 통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 글로벌 무대에서 마음놓고 뛸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손 부회장은 재벌개혁을 수시로 강조해온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성향을 의식한 탓인지 "국내기업도 외환위기 이후 경영투명성 및 기업 지배구조가 국제수준 이상으로 향상됐다"며 "기업을 개혁대상이 아닌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대표주자로 생각하고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해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손 부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에 비해 정부와 재계의 시각차는 크지 않다"며 "노 당선자가 공약대로 7%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투자를 늘리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관련기사 재계 대변 시장경제원리 주장 43살에 직장생활 접고 美유학
노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재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와 정치권에 전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손 부회장을 만나 차기정부에 바라는 바를 들어보았다.
-노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운영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경쟁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시장경제의 핵심인 경쟁의 원칙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대북사업이나 핵파문 등에서도 자유와 민주라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는 선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무조건 퍼주기식 대북지원에 나서서는 안된다. 또 '작지만 강한 정부'를 달성, 각종 규제를 줄이고 정치ㆍ금융ㆍ노동 등 사회 전분야의 고비용ㆍ저효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노 당선자가 재벌시스템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데.
▲과거 재벌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개별기업의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해서는 곤란하다. 사외이사제ㆍ감사제 도입, 소액주주 권한 강화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는 선진국보다 오히려 앞서 있을 정도로 개선됐다.
다만 자꾸 선진국의 제도만 잔뜩 도입해서는 우리 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는 이미 도입한 제도가 관행으로 정착되는 데 힘써야 한다.
-하지만 재벌에 대한 일부 국민의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도 많이 달라졌다. 경쟁력이 없거나 주주 가치를 무시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됐고 대사 불사신화도 사라졌다.
이제 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정책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시장에서 불공정한 행위를 할 때 심판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
-노 당선자는 노동시장 유연성도 많이 개선됐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서는 미흡하다. 외국인투자가들이 가장 걸림돌로 얘기하는 게 이 문제다. 특히 합리적인 노사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노동자든, 사용자든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하는 등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노 당선자가 경제정책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는 바람에 성장잠재력이 후퇴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는 투자할 만한 신규사업을 발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생산성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과도한 인건비 상승률, 경쟁국에 비해 2배나 비싼 물류비용, 과도한 세금ㆍ준조세 등의 요인이 크다.
또 외국인투자가들은 정책의 일관성 부족, 강성 노조, 열악한 주거시설 등 경쟁국에 비해 떨어지는 경영환경 때문에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차기정부가 국가의 성장, 개인의 부를 창출하는 것은 기업이라는 생각만 하면 경제성장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다.
-내년 초 임시국회가 열리면 주5일 근무제 실시도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는 국제기준에 맞는 노동법 개정 등 제도개선을 해주는 대신 실시시기는 개별기업에 맡겨야 한다. 미국에서도 금융회사는 토요일에 문을 열고 있다.
현재 실근로시간이 53시간인데 법정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면 기업에 부담이 너무 크다. 경제는 순리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시행하면 부작용이 커진다.
-과거 사례를 볼 경우 신정부 출범 초기에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재벌개혁 등 인기 영합주의의 정책들이 많이 나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듣기에만 달콤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재벌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등에 대해 시각차가 존재하더라도 노 당선자도 앞으로 국가경제를 책임지고 끌고 나가게 되면 현실적인 노선을 택하게 될 것으로 본다.
가령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복지정책 강화 등을 얘기했지만 재원 없이 도입하면 빚더미에 올라 앉는다.
-새 정부 출범과 관련한 앞으로 전경련의 계획은.
▲대통령 인수위가 구성되면 차기정부 개편안 등 재계의 의견과 시장경제 원리를 전달하겠다. 강대국도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민간기업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국은 걸핏하면 지적소유권 문제, 덤핑문제 등 통상마찰을 제기한다.
-이번 대선에서 전경련은 '부당한 정치자금은 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는 등 정경유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어떤 분이 '정치권에서 돈 달라는 얘기가 없어 서운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번 선거에서는 정말 금권ㆍ관권 선거가 사라졌다(웃음). 바람직한 현상이라 본다.
돈문제에서 자유로우면 서로 떳떳할 수 있다. 이제 기업은 자신 있게 지원해달라고 말할 수 있고 정부도 협력관계에 나서는 데 부담이 없을 것 같다.
-요즘 동북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일 재계회의에 참석했을 때 중국 부상에 대해 일본은 위협요인으로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회이다.
인천의 항공과 해운, 남북간 철도를 이용하면 중국은 물론 유럽과 연결이 가능하다. 과거 정치적인 요인 때문에 협정체결이 더뎠지만 이제는 중국ㆍ일본 등 동북아 3국이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게 시급하다. 노 당선자가 이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반갑게 생각한다.
-내년 1월 말 전경련 새 회장 선출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선진국처럼 한국도 전경련 등 민간단체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다. 전경련 회장은 하고 싶다고 하는 자리도, 하고 싫다고 하지 않는 자리도 아니다. 어떤 정부에서든 민간 경제계를 대표할 수 있는 카운터 파트가 필요한 만큼 새 시대를 이끌고 활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낼 새 리더가 나올 것으로 본다.
사진=신재호기자
대담:이종환 산업부장
정리=최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