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인 사업가 리처드 노블은 자신이 설계한 초음속 자동차 블러드하운드 SSC로 시속 1,000마일 돌파에 도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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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하운드 SSC는 초음속 자동차 중 처음으로 로켓엔진과 제트엔진을 함께 탑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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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SSC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다. 12년 전 음속보다 빠른 시속 1,228㎞의 속도를 달성했다. 하지만 내년이면 이 기록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영국의 자동차 속도광들이 제트엔진과 로켓엔진, 첨단 공기역학 기술로 무장한 초음속 자동차를 개발해 왕좌를 찬탈하기 위해 나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년 중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뒤 오는 2011년 모든 자동차 속도광들의 꿈인 시속 1,000마일(1,609㎞) 돌파에 도전할 계획이다.
100년에 걸친 도전
1997년 10월 15일 미국 네바다주의 블랙록 사막. 로켓처럼 생긴 검은색 자동차가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다. 그리고 지축을 울리는 소닉붐과 함께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초음속 전투기에서나 볼 수 있는 소닉붐을 내뿜은 주인공은 영국인 사업가 리처드 노블이 제작한 속도기록 측정용 자동차 트러스트 SSC다. 이 차량은 이날 운전자를 태운 채 사상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하며 자동차 역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1.6㎞의 직선코스를 2회 주행한 트러스트 SSC의 평균 시속은 무려 1,228㎞에 달했다. 이는 1983년 노블이 이전 모델인 트러스트Ⅱ로 세운 1,019㎞를 200㎞ 이상 경신한 것으로 지금도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실 이 같은 속도기록 경주는 F1으로 대변되는 레이싱이나 랠리 경주만큼 역사가 깊다. 전문가들은 1898년 벨기에의 자동차 마니아였던 카뮈 제나치가 직접 만든 전기자동차로 한 영국 귀족과 속도대결을 벌여 이긴 것을 효시로 본다. 당시 제나치의 기록은 시속 105.8㎞였다.
이후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유럽과 북미 속도광들을 중심으로 자존심을 건 경쟁이 끊임없이 지속됐고 결국 제나치가 경주를 벌인 지 100여년 만에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음속의 벽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이처럼 초음속의 세상을 정복한 속도광들은 이제 새로운 목표를 놓고 진검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속도에 해당하는 시속 1,000마일 돌파가 바로 그것이다.
시속 1,000마일 돌파
현재 이 같은 꿈의 실현에 가장 근접한 것은 노블이 이끄는 영국의 블러드하운드팀이다. 현존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음속돌파 자동차 설계 경험을 가진 유일한 팀이라는 것이 이유다.
이 팀이 내세운 비밀병기는 전장 12.6m의 신개념 초음속 자동차 블러드하운드 SSC. 이 모델은 초음속 자동차로는 최초로 로켓엔진과 제트엔진을 모두 장착했다.
두 엔진은 각각 주엔진과 보조엔진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제트엔진으로 시속 480㎞까지 속도를 높인 후 로켓엔진을 점화시켜 시속 1,000마일로 가속하는 2단계 추진 시스템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블러드하운드팀은 이미 최신예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에 채용된 추력 9,988㎏급 유로제트 EJ200 터보팬 엔진을 구해놓았다. 또한 추력 1만2,485㎏급 하이브리드 로켓엔진을 확보, 시험작동을 앞두고 있다.
노블에 따르면 이 로켓엔진은 애스턴 마틴의 경주용차에 쓰이는 620마력 V12엔진 252개의 추력을 제공할 수 있다. 블러드하운드팀은 이 1,700만달러짜리 자동차로 내년 가을께 트러스트 SSC의 기록을 경신하고 2011년께 시속 1,000마일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블러드하운드 SSC가 노블의 바람대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세계 최초로 시속 1,000마일을 돌파한 자동차가 되려면 전세계의 강력한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그중에서도 IBM의 전직 프로젝트 관리자 에드먼드 새들이 주도하는 미국 노스아메리칸이글팀은 블러드하운드팀의 축배를 저지할 최대 라이벌로 꼽힌다.
목숨을 건 도전
블러드하운드 SSC에 맞선 새들의 카드는 전장 17m에 이르는 이글 SSC다. 엔진은 마하2의 속도를 자랑하는 록히드 마틴의 F-104 전투기에서 떼어낸 J79 제트엔진을 채용하고 있다.
새들의 일차 목표는 블러드하운드 SSC보다 앞선 내년 7월 트러스트Ⅱ의 기록을 깨뜨리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1호 1,000마일 자동차 등극까지 노린다는 복안이다. 새들은 이미 실물 자동차를 이용한 시험주행에서 시속 560㎞에 도달한 상태다. 새들은 당초 계획대로 올해 내에 시속 800㎞ 달성을 확신하고 있다.
물론 현시점에서 누가 먼저 샴페인을 터뜨릴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단지 누가 이기든 앞으로도 수많은 기술적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시속 1,000마일을 정복하려면 음속 때와 또 다른 엄청난 기술적 장벽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 정도 속도에서는 사소한 공기역학적 불안정성만으로 차체가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 차체에 가해지는 압력이 ㎠당 무려 1.86톤에 달하기 때문이다.
두 팀 모두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공기역학적으로 완벽한 차체 설계에 매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외에도 돌풍과 같은 돌발상황, 지면조건, 비상정지 시스템, 제동용 낙하산의 성능 등 모든 면이 운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다.
도대체 이들은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이처럼 위험천만한 속도경쟁에 나섰을까. 새들은 자신들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산악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자긍심이 이들에게는 어떤 금전적 보상이나 명예보다 큰 가치를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