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야구팬들의 심기는 그리 편치 못하다. 겨우내 박찬호, 김병현 등 `빅리거`들의 활약을 고대해 왔지만 이들이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던 야구팬이라면 한번쯤 게임으로 기분전환해 보는 게 어떨까. 박찬호의 `복수`를 통쾌하게 해 줄 수 있는 `야구보다 재미있는 야구게임`들이 잇따라 나왔다.
지난 11일 PC게임으로 출시된 `MVP 베이스볼 2003`은 일렉트로닉아츠(EA)가 야구게임의 대명사였던 `트리플 플레이` 시리즈를 포기하고 내놓은 회심의 역작이다. 3DO의 `하이히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시리즈에 내줬던 야구게임의 왕좌를 되찾으려고 작심한 듯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최고의 퀄리티와 게임성으로 무장했다.
MVP 베이스볼이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는 버튼 하나로 던지고 치고 달리던 기존 야구게임의 단순 패턴을 완전히 뒤엎었다는 점. 투수는 공 하나를 던져도 구질, 코스, 완급, 릴리스 포인트, 타자의 약점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성공적인 피칭을 할 수 있다. 야구게임 팬들을 짜증나게 했던 고질적인 `반복 패턴`이나 일명 `얍삽이 플레이`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MVP 베이스볼이 야구게임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릴 수 있었던 건 역시 그래픽의 사실감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척 보기만 하면 “아, 저 선수!” 할 만큼, 600명이 넘는 현역선수의 얼굴과 몸매, 타격ㆍ투구폼, 특이한 습관과 종합적인 능력치까지 그대로 되살려졌다. 스포츠 게임 사상 이토록 리얼하게 선수를 재현해낸 게임은 결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
그라운드 속 선수들의 움직임은 마치 TV중계를 보는 듯 자연스럽다. 야수가 공을 잡는 위치와 자세, 상황에 따라 송구하는 모습도 천차만별이고, 태그를 피해 몸을 살짝 틀며 슬라이딩하는 주자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선수단의 사기가 팀을 연승 혹은 연패로 이끌기도 하고 경기가 자동 시뮬레이션되는 중에도 승부처라고 판단되는 이닝에 개입할 수 있는 등 숨겨진 인공지능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X박스, PC게임으로 나왔고 PS2용은 5월 출시 예정.
이에 반해 지난 3월 출시된 PC게임 `하이히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2004`는 하이히트 마니아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수작임에 틀림없지만, 새 경쟁자인 MVP 베이스볼과 대적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래픽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선수들의 얼굴은 여전히 알아볼 수 없고 몸놀림은 어색하다. 전작과 다르지 않은 틀에 박힌 해설도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