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사장님~ 나이스샷'은 잊어 주세요

■ 캐디 업그레이드… "이젠 그린 동반자"



[리빙 앤 조이] '사장님~ 나이스샷'은 잊어 주세요 ■ 캐디 업그레이드… "이젠 그린 동반자" 『 ▦캐디: 오전 4시.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원라운드(18홀)만 일하면 퇴근이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가볍게 일어났다. 손님만 잘 만나면 좋겠는데… ▦골퍼: 모처럼만의 휴일. 평소 같으면 늦잠을 잤겠지만 라운딩 생각을 하니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알람은 오전 4시에 맞춰두었건만 뒤척이다 3시에 눈을 뜨고 말았다. ▦캐디: 초스피드 화장을 하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현관에서 손님들을 맞았다. 매너까진 바라지 않사오니 제발 ‘거북이(진행이 느린 손님)’만 걸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골퍼: 클럽하우스 입구에 도착하니 캐디들이 인사를 한다. 오늘은 실력 발휘 좀 하게 센스 있는 캐디를 만났으면 좋겠다. ▦캐디: 남자 4명팀을 배정받았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 것 같은데. 날씨도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고. 가방 4개에 클럽 수는… 아니 근데 이 손님 클럽 장난이 아니네. 이 최신 A사 드라이버랑 단조헤드 아이언 좀 봐. 완전 프로다. 오늘 실력 좀 봐야겠는데. ▦골퍼: 스타트에 나와있는 캐디 언니가 내 골프백을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 그래 나도 마음만은 타이거 우즈라니까. 오늘 한번 제대로 보여주겠어. 첫 홀 오너(honorㆍ제일 먼저 샷을 하는 사람)는 나. 혼신의 힘을 다해 ‘따악~’. 아 너무 세게 쳤나. 공이 어디로 갔지? ▦캐디: 힘 자랑하러 나왔나. 급경사 숲 속으로 날아간 공. 아무리 뒤져도 못 찾겠다. 차라리 OB나 나지! 오늘 왠지 원라운드 뛰고도 녹초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골퍼: 그립 잡는 법을 바꿨더니 영 방향 조절이 안 된다. 내가 방향성 하나는 끝내줬는데. 다시 한 번 도전. 아뿔싸! 결과는 OB. 친구들이 함께 멀리건(벌타 없이 다시 한번 치는 것)을 외쳐준다. 역시 친구들밖에 없다. ▦캐디: 온탕 냉탕 오가며 코스에서 고사를 지내실 작정인가 보다. OB말뚝 어디에 있는지, 러프에 무슨 나무가 몇 그루나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번에도 역시 OB. 심지어 다같이 멀리건 외치는 저 우정은 또 뭐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는데도 앞팀은 보이지도 않고 뒷팀에선 빨리 치고 나가라고 아우성이다. 저 손님은 또 뒤땅치기 하시네. 한 무더기씩 파여 나가는 잔디에 내 마음도 파인다. 아 언제 디봇(뗏장) 보수 다 하나. ▦골퍼: 새로 산 3피스 공이 다 사라졌다. 캐디 언니도 공 찾다 지쳤는지 포기한 눈치다. 아, 내 공… 연습 스윙이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이 정도면 완벽한데 왜 자꾸 OB가 나는 거지. 내 연습스윙에 언니도 놀라워하는 눈치다. 이 정도면 싱글 수준이지! ▦캐디: 이 손님들 오늘 아주 황제골프를 즐기신다. 앞팀은 이미 끝내고 나가신 듯한데 도저히 진행이 안 된다. 겨우 18홀을 끝내고 들어가는데 ‘OB맨’이 다가와 스코어카드를 한 장만 더 달라고 한다. 왜 달라는 거지. 아무튼 지친 하루, 쉬고만 싶다. ▦골퍼: 오늘 따라 이상하게 안 맞았다. 캐디 언니랑 궁합이 안 맞았나. 스코어카드를 한 장 더 받았다. 그대로 보여줬다간 회사 가서 김부장에게 창피당할 게 뻔하니 새로 작성해 보여줘야지. 아쉽지만 한달 뒤 실력을 뽐내야겠다. 싱글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필드에선 흔히 있을 만한 캐디와 골퍼의 동상이몽. 캐디는 골퍼보다 골프코스에 밝아 골퍼의 라운드를 이끌어주는 조언자인 동시에 골퍼가 라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맨이다. 골퍼는 캐디에게 의지하면서도 늘 골퍼는 갑, 캐디는 을인 관계다. 이번주 리빙앤조이는 최근 전문 서비스직으로 자리잡아가는 캐디라는 직업, 그리고 영원한 ‘을’로 살아가는 그들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다. 』 ● 당신은 혹시 '거북이' '섰다맨' 아닙니까? 시중드는 일에서 골퍼 경기 좌우 '그린 리더'로 성장 고소득 전문직 진화…캐디관리 마스터·레슨강사 전업도 국내 골프인구 300만 시대가 열렸다. 전국 300여개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는 4만여 명이며 매년 증가세다. 일반적으로 캐디의 도움을 받지 않는 외국과 달리 국내 골프장에서 캐디 없는 라운드는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국내 골프장은 늘 시간의 압박에 쫓기는 것도 외국과 다르다. 캐디들은 골퍼들의 경기를 도우며 전체적인 진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다 카트 운전, 날씨 및 거리, 코스 특징 등에 따라 조언하는 일, 스코어카드를 작성하고 클럽 주인을 기억해 각자의 클럽을 챙기는 일, 거리에 맞는 클럽을 전달하는 일 모두 캐디의 몫이다. 골프 문화가 성숙하면서 골퍼의 짐을 들고 시중을 든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캐디도 단순 업무를 탈피, 골퍼의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그린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직접 골프를 하고 수준급 골프 실력을 자랑하는 캐디들도 점차 늘고 있다. ■ 눈치 빠른 한국 캐디들 지난해 방한한 제리 타디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회장은 “혼자서 4명의 골퍼를 커버하는 한국 캐디들에 놀랐다”는 말을 했다. 공식적인 캐디 업무는 1인 10역이다. 여기에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캐디라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일단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스트레칭을 유도해 골퍼들의 몸을 풀어주고 코스 특징을 설명하며 공략 지점과 방법을 안내한다. 티샷을 마치고 나면 핀까지 남은 거리를 불러준다. 적절한 클럽을 갖다 주고 클럽 선택을 조언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1인당 14개씩 총 56개의 클럽과 공만 보고 누구 것인지 기억하고 주인에게 척척 건넨다. 공을 칠 때마다 방향을 파악해 둔 뒤 공을 찾아주고 틈틈이 잔디 정리, 벙커 정리 등도 한다. 골퍼 10명 중 9명은 내기를 한다. 캐디들은 때로 게임의 심판이 돼 스코어를 계산하고 기록해주며 상금을 계산해주는 일까지 한다. 카트 운전도 캐디의 몫이며 원하면 물과 커피를 대접하기도 한다. 그린에서 볼을 닦아주고, 라인을 체크해주고, 오르막 내리막의 정도를 일러준다. 클럽 헤드를 닦아 청결을 유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따라 공이 안 맞는’ 손님에겐 위로해주고 ‘오늘은 좀 잘 맞는’ 손님을 위해 함께 기뻐해야 한다. 이따금씩 만나는 ‘진상 손님’에게 적절히 대처해야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보통 캐디들은 최소 두번째 홀에 미치기 전까지 손님 성향 파악이 끝난다고 한다. 직업부터 성격, 구력 모든 것이 캐디의 눈에 읽히는 것. 고수 캐디는 “이제 소리만 들어도 공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감이 온다”고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커버하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한다. 중요한 골프대회가 있을 때는 TV 중계도 챙겨본다. 일부 골프장은 그날그날 주요 뉴스 기사를 스크랩해 캐디 게시판에 붙여둔다. 일부 골퍼들은 캐디들의 조언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준급 골프실력을 자랑하는 캐디들도 상당히 많다. 최근 열린 캐디골프대회에선 참가자 183명 중 무려 3명이 70타대를 기록했고 싱글핸디캡 골퍼가 5명, 보기플레이어가 32명이나 됐다. ■ 언니에서 ‘그린 리더’로 고소득 전문직으로 캐디를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국내 대학에 캐디학과가 설립되고 전문캐디양성 과정이나 자격증이 생겼다. 고졸 학력자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30~40% 이상이 대졸 학력을 자랑할 정도며 일부 골프장에는 해외유학파가 캐디 모집에 지원하는등 캐디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 골프장의 경우 평균 월수입이 300만원 안팎. 요즘 같은 성수기에는 평일에도 투 라운드를 도는 일이 잦아 350만원 정도까지도 번다. 스스로 일정 관리만 잘 하면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있고 정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력을 쌓아 골프장에서 캐디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마스터가 되거나 레슨 강사로 전업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캐디를 시중드는 사람쯤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필드 동반자로 인식하고 매너를 지키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아직까지도 농익은 농담으로 여성 캐디를 난처하게 하는 남자 손님들이 있지만 정도가 심할 경우 퇴장 조치하거나 캐디 스스로 교체 신청을 하고 블랙리스트를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캐디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됐다. 최근에는 ‘고수 캐디’를 육성하는 골프장도 등장했다. 강원 속초의 파인리즈골프장은 ‘명품 캐디에게 받는 코스 레슨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전문기관에서 인정하는 소정의 자격을 갖춘 티칭 프로(캐디)를 지정해 라운드하는 것. 이를 위해 파인리즈골프장은 캐디 응모자 조건을 프로 자격증 희망자에 한해 채용했다. 지원자에게는 자격증 취득까지 훈련, 테스트비용을 지원해주고 연습장, 체력단련실, 스윙분석실 등을 이용하며 주3일 투어프로들과 동반 라운드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어에 능한 캐디 수요가 높아지면서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갖추려는 캐디들도 늘고 있다. ● 15kg 짐들고 강행군 어깨·무릎 통증은 기본 고소득 전문직으로서 캐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자신이 캐디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캐디들이 많다. 인터넷 카페 '캐디세상(cafe.daum.net/caddie1004)'에는 "전문 서비스업으로 자부심을 느끼지만 '단순히 골퍼의 수발을 드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캐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때가 많다"는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연간 3,000만~3,500만원의 고소득 직업이지만 체력 소모가 많고 서비스직인만큼 사람으로 인해 얻는 스트레스도 크다. 남성 골퍼와 여성 캐디의 조합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많은 캐디들은 상처받는다. 5시간 동안 걷거나 뛰어다니며 무거운 클럽을 옮겨야 하고 수십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지만 매너 좋은 손님을 만나면 시간은 금세 간다. 하지만 '진상 손님'을 만나면 그 상처가 몇 달 가기도 하고 캐디들이 일을 그만두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캐디들의 어깨ㆍ무릎은 일기예보중 최소 14개 클럽에 골프공, 옷가지와 간식 등 잡동사니가 든 골프백은 15㎏을 훌쩍 넘는다. "TV 일기예보는 틀려도 캐디들의 어깨는 비오는 날을 귀신 같이 알아맞힌다"고 말하는 이유다. 보통 캐디들은 한쪽 어깨 통증을 호소한다. 여러 개 클럽을 한쪽 팔에 끼고 뛰어다니며 골퍼들에게 나눠주다 생긴 병이다. 무릎 통증을 겪는 경우도 많다. 볼 마크를 할 때마다, 퍼팅라인을 봐줄 때마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 운 나쁜 날이면 한 홀당 8번씩 144회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한다. 20대 초반에도 월 300만원 수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고소득 직업이지만 전국적으로 캐디 인력난을 호소하는 것은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봄, 가을 본격적인 골프 시즌이 되면 일주일에 3~4일은 투라운드를 하게 된다. 투라운드가 있는 날이면 하루 10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쉬고 싶어도 겨울 오프 시즌을 생각해 이를 악물고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캐디는 움직이는 만큼 돈을 번다. 경력이 쌓여도 캐디 관리자급으로 승진하지 않는 이상 초보 캐디들과 소득이 똑같다는 점도 장수 직업이 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다. ■ 제일 싫은 건 '거북이'와 '섰다맨' 캐디들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골퍼는 진행이 느린 손님이다. 한 팀당 주어진 시간은 4~5시간인데 진행이 느린 손님들은 경치 구경을 하거나 너무 신중하게 샷을 하고 심지어 애인과 애정행각을 벌이느라 공치는 건 뒷전이다. 머리 올리는(필드에 처음 나온) 손님이 오는 날이면 캐디들은 땅이 꺼지게 한숨이 나온다. "신상 티가 나는 옷부터 가방, 클럽 할 것 없이 반짝반짝 윤이 나고 흠집 하나 없다면 '아, 오늘 진행이 늦겠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게 캐디들의 전언이다. 캐디들은 차라리 매너가 없더라도 알아서 치고 빨리빨리 움직이는 베테랑 골퍼가 낫다고 입을 모은다. OB가 날 때마다 멀리건을 외치는 손님들 때문에 캐디들 머리는 쭈뼛쭈뼛 선다. 기도하듯 어드레스를 길게 하고 연습스윙은 서너 번씩 하는 골퍼, 능숙하지 못한 동료에게 틈 나는 대로 레슨을 하는 골퍼 모두 캐디들이 꼽는 기피대상이다. 같은 이유로 캐디들은 '핑클(여자 4명)', '퐁당퐁당(혹은 짬뽕ㆍ혼성그룹)'을 반기지 않는다. 대부분 진행이 늦고 특히 남성 고객들이 같이 온 여성들에게 레슨을 하며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캐디들이 꼽는 '진상 손님' 넘버원은 자기가 잘못 쳐놓고 캐디 탓하는 사람들이다. 캐디 한 모(28) 씨는 "내기를 할 때는 적은 돈에도 인간성의 바닥까지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며 "동반자에게 화를 낼 수 없으니 캐디에게 '왜 나만 거리를 잘못 봐줬냐'고 항의하거나 심지어 클럽을 던지는 손님들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섰다맨'도 기피대상이다. 이들은 가만히 서서 클럽을 받는 것도 모자라 꼭 캐디가 가져온 클럽을 다시 바꿔오게 한다. 이런 손님들은 공을 찾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캐디가 공을 찾을 때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 또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캐디들이 "첫 대면에서 지나치게 웃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밉상 손님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캐디 심 모(33) 씨는 "매너가 안 좋은 손님일수록 매너 있는 척하기 위해 초반에 상냥하게 말을 걸고 많이 웃는다"며 "하지만 그 가식이 첫 홀을 넘기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캐디에게 너무 의지하는 손님도 골치 아프다. 그래서 캐디들은 경력이 오래됐더라도 "몇 년 안 됐다"고 말하기 일쑤다. 베테랑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골퍼가 내내 거리를 일일이 물어보고 퍼팅 라인을 봐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그래픽=이근길기자 입력시간 : 2009-09-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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