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개혁, 이대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 높은 월급과 '철밥통'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기업 정규직 136만명, 공무원 100만명, 공기업 26만명 등 약 300만명이 이에 해당한다. 노동개혁은 이 300만명의 과보호를 완화하고 그 외 600만명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1,600만명 근로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법·제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노사정위원회가 과연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마디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정부, 노사정위에 미루는 것 직무유기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으로 노동개혁의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은 국민적 컨센서스를 강조하는 정치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일 것이다. 그러나 300만명의 과보호 완화에 동의하라는 것은 현 노동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 독배를 피하기 위해 협상이 결렬되거나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노사정위는 서로 주고받는 지루한 타협을 통해 겉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세우겠지만 실제로는 기업과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개혁안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원한다면 전문가위원회에 개혁안 성안을 일임하고 성안이 되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이 노사정위의 타협을 기다리다가는 엉뚱한 괴물이 나오거나 결렬되면서 개혁 저항 세력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외국의 성공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의 하르츠개혁은 지난 2002년 2월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됐다. 이 위원회는 독일 경총, 전경련, 노총, 야당, 여당인 사민당의 전통 세력, 노동부를 배제한 15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불과 10개월 만에 개혁안의 확정 및 입법화가 진행돼 2003년 1월1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하르츠개혁이 시행됐다. 네 번째 하르츠개혁은 2005년 1월1일부터 시행됐는데 그해 가을 하르츠개혁을 주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사민당은 선거에 져 정권을 내줬다.

노동개혁은 이와 같이 정권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노동개혁을 노사정위에 미루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일종의 직무유기다. 민간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 것은 그에 따른 비용 부담 때문인데 박 대통령의 공공 부문부터 정규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발언은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공정성 원칙에 위배된다. 이 전환 비용은 공공 부문의 다른 서비스가 줄어들거나 세금 증가로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공정성·최소한의 사회안전망 확보를

노동개혁의 또 다른 원칙은 최소생활 보장이다. 노동시장에서 낙오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으로 보듬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불완전하다. 보다 나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모든 복지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지난해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복지·보건·노동 예산만 106조원에 달한다. 소득이 생계비에 미달하는 국민이 1,000만명이라면 1인당 1,060만원씩, 4인 가구라면 4,240만원씩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복지·보건·노동 사업을 통합하고 현금으로 지원한다면 4인 가족 250만 가구 하나당 4,24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공정성 확보와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노사 개별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하고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해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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