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종말의 공포'를 이겨내며 문명은 진화했다

■ 테라: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의 기록(리처드 험블린 지음, 미래의창 펴냄)
무기력한 '심판론'에서 벗어나 과학기술 발전시켜 재난 대비
수십만 목숨 앗아간 카트리나등 人災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앞으로 몇 년 내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립방재연구소에 따르면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경우 피해는 1980년 미국 세인트 헬렌 화산의 10배를 넘고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피해 규모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됐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 가능성뿐 아니라 최근 한 해에도 몇 차례나 발생하는 세계 곳곳의 크고 작은 자연 재난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올해에만도 새해 벽두부터 최빈국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전 세계를 안타깝게 했으며 전 유럽의 항공을 마비시켰던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는 한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이 지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실감하게 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같은 자연 재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런던대 환경연구소 연구원인 저자가 펴낸 '테라(TERRA):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의 기록'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근대사에 접어들면서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인류를 경악시킨 4가지 재난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755년 리스본의 대지진에서 유럽인들은 지옥 같은 신의 심판을 맛보았다. 1783년 여름 내내 연무로 뒤덮였던 유럽 기상이변 때는 대기에서 유황 냄새가 나면서 극한의 공포감에 내몰렸다. 또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때와 1946년 하와이 힐로 쓰나미 때도 생존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닥친 비현실적 재앙에 몸서리쳤다. 그렇다면 거대한 재난이 닥칠 때마다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되고, 인간은 무기력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신의 구원을 바랄 수 밖에 없는가. 저자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이 선사하는 재난을 극복하면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구의 끊임없는 위협 덕분에 인간은 쉼없이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리스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인간은 재난을 신의 심판으로 해석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과학을 발전시켜 오히려 재난을 적극 대비하기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리스본 대지진을 겪은 근대 학자들은 '지진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냈으며 1783년의 유럽 기상이변을 통해 대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상학'이 탄생하는 단초가 마련됐다. 1883년의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과 1946년의 하와이 힐로 쓰나미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취하게 됐다. 그러나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4년 인도양을 휩쓴 쓰나미와 2008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난이 보여주듯 인간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난이었음에도 안일한 태도와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재앙을 키웠다. 지구는 지금도 분명히 또 다른 재앙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재앙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재앙을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 그것이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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