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송대성 세종연구소장

"北 연평도 도발은 천안함 사태 응징못한 南을 얕잡아 본 것"
MB정부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낮아
오바마 대북정책은 더 강경해 질것
굳건한 한미동맹체제 유지하고
'中, 비합리적 北관리'서 손떼게 해야



"한나라당에 보수신념이 찬 사람만 모인 게 아니에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전부 다르니 대책도 제각각이고 한국 안보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권에 이념이 뒤섞여 있다는 겁니다." 송대성(65ㆍ사진) 세종연구소장은 지난해 6월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 초청강사로 간 일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화제였다. 당시 그는 '북한 핵실험 도발과 대응책'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던 중 모두 발언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정국을 매섭게 질타했고 한나라당에 "진보니 좌파니 친북세력인 꽃뱀에 신경 쓰지 말고 본처(보수세력)에게나 신경쓰라"고 꼬집었다. 당시 몇몇 한나라당 의원은 그에게 거친 언사를 던지며 항의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일을 '곤욕'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때 강원도 속초에서는 말 잘했다고 오징어나 고사리도 보내주고 응원했다. '송사모(송대성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만들어 지지하더라"며 그는 사뭇 당당했다. 보수를 대표하지 못하는 이 정부에 못마땅해 있던 사람들을 대변했다는 표정이었다. 송 소장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공군장성 출신 정치학박사다. 서울경제신문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흘째인 지난 26일 저녁 그를 서울 서초동 자택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2시간30분가량의 인터뷰 내내 대한민국이 북한의 실체를 몰라 허를 찔렸다고 개탄했다. 그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 원인을 8개월 전 천안함 사태에서 찾았다.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5ㆍ24 대책을 말하면서 단호히 응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단호한 응징을 하지 않고 미뤘다. 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못 받고 북한에 우습게 보인 거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교류를 중단한다고 하면서도 물밑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을 목말라 했다. 북한이 우리를 얕잡아 보도록 원인을 준 것이다." 그는 군에 대한 일침을 이어갔다. "군사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눌 수 있다. 북한 개머리 진지에 무려 1,000문이나 되는 해안포가 있는데 우리는 연평도에 고작 6문이 있다. 그나마 2개는 고장 났고 4개밖에 없다. 이 전투력으로 그 정도 저항한 게 가상할 정도다. 하드웨어가 심각한 문제다." 그가 더 심각하다고 보는 것은 소프트웨어인 정신무장이다. "옛날에 사관생도 생활을 할 때 가슴에 단 표어는 '견적필살(見敵必殺)'이다. 적을 보면 반드시 먼저 죽인다는 신념을 심어줬다. 그때는 민간인도 반군인이었다. 군에 가면 때론 전쟁도 할 수 있고 순직할 수도 있는 거다. 천안함이나 이번 사태 때 희생자 유족이 해군참모총장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게 언론에 나오는데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이러면 안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한국전 참전 용사가 내게 묻더라. 어떻게 참모총장 멱살을 잡느냐고." 그는 북한군 훈련장면과 우리 군을 대조했다. "지난 정부가 북한은 우리의 형제ㆍ동포라며 주적(主敵)개념을 뺐다. 그러니 우리 군인들은 견적필살을 이해 못한다. 북한에서는 20만명의 특수군이 웃통을 벗고 두꺼운 널빤지 위에 대못을 이마로 박고 맨발로 깨진 유리병 위를 뛴다. 그 군인과 이 군인을 붙여놓으면 어떻게 하나. 김정일이 알까 싶어 겁난다." 이번 사태로 진보진영에서는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송 소장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진단했다."우리는 조건 없는 교류 협력을 했지만 북한은 철저히 전략전술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했다. 우리가 원했던 신뢰구축은 없었다. 북한은 그저 경제적 실리만 추구했고 친북문화를 확산한 다음 허상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연방제 통일을 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에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섰을 당시 북한의 선택을 '큰 실책'이라고 표현했다. 오바마 정부가 유화적이라 기대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온 몸으로 거부한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ㆍ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상대함)' 정책은 북한 스스로를 막판에 몰아붙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MB 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은 비핵만 하면 진심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강경한 것도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북한이 MB 정부에 비핵화를 한꺼번에 폐기하기는 어려우니 협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하자고 맞춰줬으면 남북관계는 상당히 유화적으로 갔을 텐데 참여정부 때처럼 해달라고 고압적으로 나왔다. 그것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내다봤다. "아마 이 사건후유증을 수습하다 보면 MB 정부 임기가 끝날 것이다. 이제 정상회담의 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이런 상황을 그냥 덮으면서 정상회담을 추구하면 절대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는 예전에 그랬듯 앞으로도 북한에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오는 2012년 미 대선을 앞두고 대외 정책의 성과를 내기 위해 기조를 완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에 그는 단호했다. "오히려 오바마 정부가 북한을 쥐어짜는 방향으로 성과를 거둘지 모른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나쁜 정권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결국 그는 대안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미연합방위체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고 북한정권을 여지없이 멸할 수 있는 방위체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자기네 본토를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의회 승인 필요 없이 많은 지원군을 보낼 수도 있고 북한의 심장부를 때릴 수도 있다. 이라크전에서 맹위를 떨친 미국의 토마스미스함은 사정거리가 1,600㎞다. 서울~부산 거리의 4배다. 명중률은 98%고 백령도 근처까지도 안 가고 부산에서 북한을 얼마든지 파괴할 수 있다. 북한은 그걸 겁내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실망이라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태 이후 '5·24대북제재조치'에서 합리적이면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뒤 한미 외교ㆍ국방장관(2+2) 회의에서, 그리고 제42차 한미안보회의(SCM)에서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거듭 천명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런 도전이 와도 가만히 있다면 미국도 우리도 종이 호랑이다." 또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중국이다. 당장 28일 서해상에서 미국의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를 띄운 한미연합훈련에 중국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송 소장은 중국 당국자들을 만날 때마다 대놓고 북한에서 손을 떼라고 말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관리해선 안 된다. 중국의 북한관리는 미국의 한국지원에 비해 비인간적이고 질적으로도 형편없다. 그 결과 북한은 지구촌의 최빈국 및 최고로 잔혹한 독재병영국가가 돼 있다.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장애도 중국의 비합리적이고 과욕적인 북한관리이다. 중국이 진짜 마음먹고 통일 시키겠다고 하면 금방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산당 관계자나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면 손 떼라고 그런다. 그러면 기분 나빠한다. 자기네들은 도와준다는 거다. 하지만 속으로는 통일을 염려한다. 통일이 되면 난민이 많이 나온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이익이다. 통일되면 백두산에 나온 북한 난민도 도로 돌아갈 거다. 수많은 중국 사람들이 기차 타고 부산에 와서 회 먹고 중국 아가씨도 와서 놀면 좋지 않겠냐고 하니 그제야 웃으면서 개인적으로 수긍한다고 하더라." ◇약력 ▦1945년 경남 합천 ▦1973년 공군사관학교 교수 ▦1984년 미 미시간대 정치학 박사 ▦1996년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 ▦세종연구소 정책연구실 실장 ▦국무총리자문기구 정책평가위원회 민간위원 ▦2001년 국제정치학회 부회장 ▦2009년~현재 세종연구소 소장
안보·통일·외교 분야 정책대안 개발하는 민간 공익硏
■세종연구소는 지난 1986년 1월 창설된 순수 민간 공익연구소. 1983년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이후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다룰 연구소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설립됐다. 홈페이지에 실린 소개글에는 '나라의 안전과 남북통일 및 대외관계에 필요한 연구와 교육·연수를 통해 나라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그 설립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안보·통일·외교 정책 분야의 중장기적인 국가전략과 정책대안을 개발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종연구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설립했던 일해재단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1990년대 세종재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부지 20만평 중 18만평을 국가에 기부하는 과정에서 그 아래 있던 세종연구소도 독립 민간 연구소로 거듭났다. 정치적으로 중도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으며 연구소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보수적 성향의 연구원과 진보적 성향의 연구원이 공존하고 있다. 송대성 소장은 "정치적 성향이 다양해 컨트롤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출신으로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 정일영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등이 꼽힌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인사로 꼽히는 임동원ㆍ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이 연구소에 몸담았었다. 세종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연구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세종 국가전략포럼'을 개최하고 계간 '국가전략', 월간 '정세와 정책'을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연구논문을 출판물 형태로 발간하고 있다. 또한 매년 20~30편의 중장기 정책연구와 2편가량의 종합연구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2005년부터 국정과제 연수과정을 만들어 정부와 사회 각 분야의 실무 책임자들이 탈냉전 이후 세계 질서의 변화와 주요국의 대응 전략을 이해하고 정책 수립에 도움을 받도록 하고 있다.
햇볕정책 비합리성 전작권 반환등 강력 비판 대표적 보수 논객
■송대성 소장은 합참 근무중 연구한 '배달민족 군축안'
국방부 군축문제 '배달계획'의 토대
경남 합천군 대병면 하금리 산골의 가난한 한문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55년간 매일 일기를 적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그가 오늘까지 각종 기고나 연설을 하는 바탕이 됐다. 광복 30주년인 지난 1975년 KBS 주관 해방둥이 수기모집에 응해 그가 쓴 '패기만이 인생을 영원하게 만든다!'가 우수작에 당선돼 KBS라디오를 통해 며칠간 연속낭독된 일도 있다. 공군에서는 이 수기를 장병들의 정신교육용 소재로 수년간 사용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6년간 교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화들을 남겼다. 우수한 공사후배들을 모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한번 강단에 서면 평균 3∼4시간 목에서 피를 토하는 연속강연을 했다. 1970년대 초중반 전국 고등학교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한 '해골바가지 연설' 역시 유명한 일화다. 서울대 상대나 법대가 고등학생들의 최고의 선망 대학이 되면서 시들해진 공군사관학교의 인기를 되살린 연설이다. 송 소장은 한반도 역사에 등장한 인물들을 네 종류의 해골바가지로 구분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느냐고 역설하며 학생들을 감동시켰고 1973~1975년 공군사관학교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지원을 끌어올린 효과를 거뒀다. 그는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 합동참모본부에서 1년간 근무했다. 합참 근무 중 그가 연구한 '배달민족군축안'은 그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뒤 현재 국방부에서 남북한 군축문제를 다루고 있는 '배달계획'의 토대가 됐다. 1985년 당시 육ㆍ해ㆍ공군 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 외국 명문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은 점 때문에 기무사에 발탁됐다. 그로부터 10년 반 동안 북한정권 실체, 북한의 대남전략전술, 방첩업무, 방산업무, 보안업무 등 국방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공부와 근무경험을 쌓으면서 1988년 대령, 1992년 장군으로 진급했고 기무사 참모장을 최종 보직으로 1996년 1월 전역했다. 전역한 해 3월 세종연구소에 연구위원으로 선발된 뒤 국민의 정부 및 참여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비합리성 및 전작권 전환 결정 등을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많은 어려움들을 겪으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보수논객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세종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그 이전까지 진보성향의 연구원이 다수를 차지했던 세종연구소의 '보수진영 소장'이지만 정치적 중립과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연구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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